태국을 처음 가게 된 건 고등학교를 갓 올라갔을 무렵 방학 때였다. 교회에서 갔던 선교여행으로였다. 당시엔 혼자 다니지 않고 차로 이동해서 다녀 어디가 어딘지 몰랐다. 그저 내가 처음 외국에 나와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안이 벙벙했던 시기였다랄까. 그래서 많은 추억이 있지는 않다.
그 후로 태국을 딱히 방문할 일은 없었다. 옆이라고 할 수 있는 베트남은 출장으로 혹은 가족여행으로 여러번 갔었는데 태국은 선택지에 들어있지 못했다. 왜 배제를 하고 있었는진 기억나지 않지만 해외여행을 나갈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좀 더 큰 나라를 가서 보고 배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던 부모님의 의중이 반영됐다 말해두겠다.
시간이 지나 아이폰14 시리즈가 나올쯤이었다. 휴가를 써야 하는데 갈 나라를 정하다가 문득 태국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폰14를 곧장 살 수 있는 나라가 태국이었다. 아이폰을 사기 위해 한국에서 6시간 걸리는 나라를 가는 사람이 어딨냐고 말하겠으나 뭐 젊을 때 무모해야지 싶어 목적지를 그렇게 정하게 됐다.
그렇게 방문했던 태국 방콕. 첫날 아이폰을 수령하는 목적을 달성한 뒤 나는 더운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관광지를 간 것도, 그렇다고 관광객들이 잔뜩 몰려있는 맛집을 검색해 간 것도 아니었다. 그냥 숙소 근처 혹은 어떤 역에 내려 무작정 걸었다. 다리가 좀 아프기도 했지만 그게 좋았다. 물론 도로를 보면 꽉 막힌 교통체증으로 정신없었지만 그마저도 무언가 여유로우면서 한적한 안정감을 전해줬기 때문이었다.
무슨말이냐면, 방콕 번화가를 벗어나면 대부분 국민들은 발전한 세상과 동떨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빈익빈 부익부의 격차가 엄청난 이 나라에서 평범한 그들의 얼굴은 불행이 가득해보이지 않았다. 그저 주어진 삶을 바쁘게 살아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내겐 참 많은 질문과 깨달음을 전해줬다. 그들보다 내가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단 안도감이 아니라 어떻게 사는 게 삶을 가치있게 사는 건지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었으니까.
애석하게도 한국으로 돌아가 여러 고민에 대한 답을 적용하며 살진 못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일들을 처리하기 바빴고, 겉으론 그런 척하지 않았지만 더 높은 곳으로 혹은 더 나은 걸 추구하며 정신없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세상이 인정해줄만한 그런 족적을 만들어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난 만족하지 못했다. 만족할줄 모른다는 건 아니었고 그 다음은 뭘까에 대한 고민을 풀고 싶었다.
이런 고민들이 켜켜이 쌓여갈 때쯤 다시 방콕을 찾게 됐다. 여전히 덥고 도로에 많은 차와 오토바이로 매연이 거리를 뒤덮고 있었다. 분명 바쁜 삶이 이어지고 있는 현지인들 모습 가운데 느린 무언가를 종종 목격하게 됐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오늘날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데 조금 다르면서도 느려도, 몰라도 상관 없다는 삶의 태도 말이다. 내가 그걸 추구하고 싶어 그들의 삶을 마음대로 정해진 답에 욱여넣었을진 모르겠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래서 짙은 여운이 남았다.
방콕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한동안 태국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최근 다시 태국을 이야기에 꺼내 놓고 유튜브에 관련 영상을 잇따라 찾아보는 중이다. 다시 방콕을 간다면 아마 별 특별한 일이나 액티비티를 하진 않을 것이 분명하다. 마사지를 받고 한적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아이패드로 글을 쓰고 있겠지. 어쩌면 내게 지금 이런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없는 일상을 벗어나야 한다는 시그널을 문단 앞에 언급한 행위들로 표출되는 것 아닐까.
분에 넘치는 감사와 행복들로 채워간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과연 내가 원하는 대로 혹은 그려왔던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지 되묻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런 잡생각을 내려놓으면 남들 사는 것처럼 평범하게 순탄함을 바라보며 늙어갈 수 있겠지. 이게 틀린 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하는 생각들이 특별한 것도 아니다. 다만 모두가 몽클레어를 입는다고 나도 하나 사야 길거리를 걸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노스페이스를, K2를 입어도 충분히 따뜻한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