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오전에 한남동에서 취재를 할 때였다. 이전엔 주말이면 밥먹듯이 오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일을 하기 위해 계속 방문했어야 했다. 그러니 쉬는 날엔 쳐다도 보기 싫은 곳이 돼 버렸다. 점심을 빨리 해치우고 넘어왔던 터라 여유롭게 커피를 마실 참이었다. 자주 들르던 카페를 오랜만에 간다는 사실이 꽤 좋기도 했다. 한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고 있었는데 숨통이 트이는 느낌도 들었고.
카페로 향하던 중 발걸음을 멈추게 됐다. 공사장 벽에 붙은 문구 때문이었다. 아마 수능이 끝난 뒤 누군가 붙여둔 게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았다. 문구는 “수험 끝, 모험 시작”이란 것이었다. 모험에 빨간색으로 진하게 강조가 돼 있었다. 휴대전화를 보면서 땅만 보고 걸었다면 몰랐을 건데 무심코 마주쳤던 이 문구를 한동안 쳐다봤었다.
고3 시절 수능을 준비하고 치르던 때는 내게 썩 좋지 않은 기억으로 자리하고 있다. 물론 한국에서 수험생활을 지나온 대부분 사람이라면 비슷한 마음이겠지만 말이다. 나의 경우도, 진로가 확정되지 못한 채 고등학교 생활을 마감해야 한다는 게 참 두려웠다. 원하던 수능 성적도 나오지 못해 재수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은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큰 실패의 맛이었다.
그래서 다른 일들은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제 막 20살이 됐는데 어떤 구체적이고도 큰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대학을 가든가, 아니면 재수를 하든가, 그것도 싫으면 군대를 빨리 다녀오든가. 이 3가지 길 중에 하나를 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지. 남들과 똑같을 줄 알았는데 그러지 못하고 1년을 다른 모양새로 살아야 한다는 점은 이루 설명할 수 없는 박탈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데 말이다. 물론 좋은 대학과 학부를 나오지 못하면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 현실을 본다면 별 게 아닌 건 아니다. 그래도 뭐 한 2~3년쯤, 아니 내가 생각한 만큼 실패하고 방황해도 됐던 건데. 어찌어찌해서 대학에 들어갔다면, 그래서 1년 뒤 군대를 가 전역했다면 곧바로 복학하지 않고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있고 싶은 만큼 경험하고 배우면 됐을 텐데 뭐가 그리 조급했던 건지.
주류를 쫓으며 살아간다 해도 적어도 방학 만큼은 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해봐도 괜찮았을 텐데. 여기서 또 ‘물론‘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남들 만큼 혹은 그보다 더 호들갑 떨고 치열하게 고민했으니 운이 좋게도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회사에 책상 하나 마련했다는 걸 부정할 순 없다. 나쁜 건 아니다. 노력의 결과물 아닌가.
아이러니하지 않나. 앞서 내가 봤던 빨간 문구인 ‘모험’을 대입해보자면, 남들과 비슷한 길을 걷는 건 편승에 해당한다. 그런데 나만의 목표가 있을 것이고 그건 다양한 모양새를 갖추고 있을 건데, 그걸 이뤄냈고 가령 목표 중 한가지가 삼성이었다면 열심히 했다 칭찬받을 수 있기도 하다. 어떤 시각에선, 또 다른 관점에선 똑같지 않은 결론을 낼 수 있는 거다.
난 그냥 단어 그대로 모험에만 집중해봤다. 지난 20대를 돌아봤을 때 난 모험을 하고 살았나. 꼭 모험을 해야 의미있는 삶을 사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고 말하지 못한다. 저마다 삶의 방식이 다르고 추구하는 바가 가지각색이니깐. 내 삶을 보자면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려고 했는데 결국엔 향하려는 결과는 멋진 혹은 인정이 들어가야 납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야 단계를 잘 마무리하며 왔다고 여겼던 것 같다.
감사하다. 누리는 게 생각보다 많으니까. 지금도 그렇지만 난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진 않고 있다. 우쭐거리면서 사는 게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거나 나를 가치있게 만들어주진 않으니까. 다만 20대보다 보폭이 커진 30대를 잘 살아가고 있느냐는 스스로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겉모습이라도 모험의 구색을 갖춘 것들을 애써 멀리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끊임없이 사부작거린다고 해 행복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행복하고 말고는 회사나 직업이 아닌 나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내가 어떻게 살아갈지, 지금 당장 원하는 어딘가로 떠날지 여부는 누구도 아닌 내 손에 달렸다. 요즘 살기 위해 일하기보다 일을 하기 위해 사는 것 같은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원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보라고, 순간 멈칫하고 있다면 한동안 멍을 열심히 때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