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건사고를 확인하기 위해 한 경찰서 수사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궁금한 점을 정리해 묻는 중이었는데 돌아온 말이 "그거, 1시간 전에 기사에 다 나왔잖아요"였다. 짧고 무뚝뚝한 말이 참 당황스러웠다. 이어지는 말은 장난처럼 들리는 말장난이 가득했다. 그 순간 이 사람은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건가 싶으면서 뭔가 얕잡아 당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참지 못한 나는 그럴 거면 수사과장은 왜 있는 거냐, 기자는 이미 나온 내용이라도 다시 확인하고 맥락을 짚고 질문을 더해야 하는 사람이지 않냐고 되물었다. 복붙하는 게 기자냐는 말도 덧붙여서 말이다. 감정을 절제하려 했지만 목소리가 올라갔다. 이후 그 서를 소관하는 경찰청 공보에 사실을 알렸다. 다른 기자들에게도 똑같은 응대를 했단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과장은 내게 다시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 사과는 있었지만 이미 엉켜버린 감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자가 아니라 일반 민원인의 입장으로 경찰서 회신을 받았던 날이었다. 한 달 만에 그것도 주말 늦은 밤 연락이 왔던 참이었다. 전화기 너머 담당 수사관은 내 의견을 듣기보다는 일방적으로 사건을 설명했다. 내가 질문을 하려고 하면 "여보세요, 여보세요" 하고 말을 끊고 윽박을 지르는 수준의 말을 하기도 했다. 시스템 뒤에 숨은 당시 내가 겪었던 경찰 측은 기계처럼 반응하도록 훈련된 것만 같았다. 감정은 방어적이며 설명은 일방적, 그게 다였다.
그 순간 느꼈다. 내가 기자가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하는지, 어떤 피드백을 받아야 하는지 과정과 절차를 아는 건 내가 기자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지 않은 일반인이었다면 경찰 측의 이런 안하무인한 행동에 그냥 당하고 있어야 했다. 어딘가 하소연을 하고 잘못된 점을 지적하고 싶어도 막강한 공권력은 시민을 위한다는 탈을 쓰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기에 그렇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수백 번도 넘게 이런 비슷한 응대를 경험해왔다. 전화를 하면 받지 않거나 받더라도 무성의하게 넘기는 일. 사건 설명을 하면서 본인 생각만 일방적으로 말하거나 묻지도 않은 정보를 던지고 끊는 일. 그게 반복되니 기자도 사람인지라 점점 감정이 마모돼 간다. 당연한 듯 넘기고 어쩔 수 없다고 자조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전화조차 두려워하고 또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꺼내는 데 한참이 걸린다. 그런데 그런 이들에게 돌아오는 응대가 무시나 단절이라면 과연 나라 시스템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무례한 말투 하나가 누군가의 목소리를 꺾는다면 누군가에겐 작은 실망이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절망이 될 수도 있다. 제도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제도를 작동시키는 사람들의 태도라는 걸 이번에도 여지없이 느낀다.
기자는 질문할 수 있는 힘이 있다. 묻는 데 익숙하고 묻고 나서 받아야 할 응답을 얻어간다. 기자생활 N년차로 접어들며 이를 당연하게 어쩌면 권리인 것처럼 생각해왔었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이런 일들을 잇따라 겪으며 내가 쥔 영향력이 당연하지 않음을, 그리고 올바른 목적에 맞게 힘주어 사용해야 함을 느끼게 됐다. 누군가는 하고 싶어도 쉽사리 하지 못하는 것을, 더 정확한 사실관계를 얻어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현실의 아쉬움을 누군가는 받아들이고 있을 테니까.
남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이 이 일의 본질은 아님을, 많은 사람을 대신해 펜대를 굴리며 일선에서 열심히 머리를 굴리며 싸워가고 있음을 곱씹어보자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