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잠깐 필요했던 존재였다

by Paul
언론사를 본인의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사람들을 만나면 적잖은 허탈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Paul 제공

언젠가부터 제보창을 열심히 들여다보게 됐다. 출입처를 드나들며 취재할 거리가 잔뜩 있다면 좋겠지만(사실은 그렇지 않지만) 매일 그런 정신 없는 하루를 보낼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버릇처럼 회사 제보창에 들어가 사람들이 보내준 이야기를 훑어보는 게 일상이 됐다. 내 나와바리에서 발생한 일이라면 기동력있게 취재할 수 있으니깐.


제보창엔 안타까운 사연들이 쏟아진다. 이 좁은 대한민국에서 어찌나 사건 사고들이 많은지. 그래서 이것들을 읽고 있자면 참 많은 감정이 소비된다. 어쨌든 제보 내용을 이해하고 정리해야 다음 취재를 할 수 있으니 감정이 이입될 수 밖에 없지 않나.


제보자와 연락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렇다. 대화를 나누며 제보자를 향해 공감을 표해야 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취재가 확정되면 하나의 기사로 보도가 된다. 기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 뿐인데 어떤 제보자는 장문의 문자를 보내주기도 한다. 사건이 해결된 건 아니지만 보도를 통해 조금이나마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말이다.


이따금씩 있는 이런 감사 덕분에 제보창을 놓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는 반복되는 똑같은 업무 행위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겠으나 누군가에겐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시발점이 되니깐. 그런데 최근 들어 우리를 악용하려는 사람들을 잇따라 마주하게 되면서 힘이 빠지는 일을 경험하게 됐다.


사례는 이렇다. 여러분도 뉴스를 보면 잘 아는 내용일 텐데, ‘취재가 시작되니’란 마법의 단어다. 시민의 민원에도 꿈쩍하지 않는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이 언론사 연락을 받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친절해지며 해결해주지 않던 걸 단숨에 처리해주는 거다. 그동안 이를 잘 학습한 사람들은 자신의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대한 이득을 보기 위해 제보를 보낸다는 거다.


사실 취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엔 이런 사실을 모른다. 우린 사건 내용 자체만으로 판단해 취재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제보자가 어떤 마음으로 우리에게 손을 뻗었는지 알지 못한다. 열심히 이야기를 들어주고 취재를 위해 약속을 잡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이 약속을 잡기 위해 연락하면 ‘문제가 해결됐으니 인터뷰는 안하는 게 좋겠다’는 식의 답장이 온다.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던 곳에 ‘내가 언론사 제보를 해 기자가 취재를 시작했다’고 말했던 거다. 그럼 당연히 기업들은 ‘해결해주겠다. 대신 제보를 하지 말아달라’ 혹은 인터뷰에 응하지 않길 권한다. 결과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이들은 굳이 언론사 취재에 응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고 앞서 언급했던 답장을 ‘띡’ 보낸다.


이런 연락을 받으면 힘이 빠진다. 나를 그리고 우리 회사를 도구로 완벽하게 이용했다는 점에서 사실은 그럴 수도 있지란 생각은 들진 않는다. 얼마나 그 상황이 절박해서 이런 선택까지 했겠냐만은 방법과 순서가 잘못됐는데, 그걸 안다면 이러진 않았겠지 생각한다. 난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잘 해결되어서 다행이다 정도의 톤으로 연락을 마무리한다.


힘이 빠지는 건 둘째치고 종종 발생하는 이같은 일을 지나고 나면 다른 제보들을 마주할 때 의심부터 하게 된다. 이 제보자는 정말 우리 도움이 필요한 걸까, 취재를 진행하다가 뒷통수를 맞진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그러다보면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힘주어 취재를 하기보다 적당히 기본대로만 일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되뇌이는 날 발견하게 된다.


우린 삶을 살며 혼자서 해내지 못하는 많은 순간이 있다. 오늘 내가 이 모습을 하고 살아가는 건 보이진 않아도 누군가의 도움이나 헌신으로 채워졌기 때문일 수 있다. 그 도움은 그저 갖고 있는 걸 쉽게 내어준 게 아니라는 것을, 최선과 노력이 가득담긴 결과라는 걸 잊지 말아보려 노력해봐야겠다 싶다. 그래야 다음 차례 땐 감사를 바탕으로 기꺼이 내어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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