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짝궁 회사에서 어린이날 기념으로 학용품 세트를 지원해준다고 했다. 내게 전달할 곳이 있느냐고 물었고 관계자를 통해 한 센터를 연결해줬다. 이후 학용품이 배달됐고 센터장님은 감사 인사를 전해주셨다. 이 말을 짝궁에게 전해주니 더 큰 나눔을 할 곳이 없느냐고 물었다. 어린이날인데 통 크게 선물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솔직히 좀 놀랐다. 학용품 세트야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것이지만 선물은 말 그대로 우리의 돈과 시간이 들어가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내게 이런 제안을 해주는 짝궁의 모습이 참 감사했다. 지체하면 뭐하나 선물을 전달할 수 있는 시간만 다가올 뿐이었다.
나는 곧바로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열었다. 학부 시절 센터와 공부방 봉사를 함께한 이들에게 연락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취업을 하고 각자 삶을 살기 바빴기에 과거보다 두터운 라포는 없었다. 그럼에도 이런 연락을 할 수 있었던 건 봉사를 하며 배우고 느겼던 가치를 우리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 좋다며 당장 참여 의사를 밝혀준 이들이 많았다. 앞서 말했듯 이젠 대외활동이란 명분이 있는 것도 아닌 어른이고 1만원이라도 내 돈을 누군가에게 쓰는 것임에도 이들은 기꺼이 그것을 내어줬다. 망설임 없이 당장 그렇게 하자고 말해주니 적잖은 책임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음 맞는 몇명이 작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1만원부터 5만원, 많게는 몇십만원을 투척해줬다. 어린이날 전 선물을 주는 게 목표였기에 퇴근하고 몇일 동안 바쁘게 움직였다. 고심하며 선물을 골랐고 대형마트를 잇따라 돌며 재고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받았을 때 기대감이 컸으면 해 포장지를 사 꼬박 2시간을 앉아 서른개가 넘는 박스를 포장하기도 했다.
디데이였던 주말 아침 일찍 짝궁과 센터로 향했다. 당시 활동을 함께 했던 친구 한명도 현장에 와줬다. 아이들이 속속 센터에 모였고 조촐한 선물전달식을 가졌다. 포장지를 뜯어보자 아이들 눈에선 기쁨을 감출 수 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어떤 아이는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선물을 살펴보기도 했다. 한 아이는 “어른이 되면 나도 이런 나눔을 꼭 하겠다”란 다짐도 전해줬다.
사실 저 말이 선물 나눔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궁극적 목표였다. 크고 비싸고 좋은 것을 전해주려 기다리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필요한 곳에 기꺼이 나눌 수 있는 게 중요하니까 말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후배 10명에게 커피 한잔씩은 사줄 수 있는 것과 동일하다. 측정할 수 있는 값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눈다는 그 마음, 이것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했고 모금에 참여하게 만들었고 쉬어도 모자랄 늦은 밤 거실에 쪼그리고 앉아 선물을 포장해 늦잠을 마다하고 주말 아침 선물 배송을 가게 한 것이다.
모금에 참여했던 친구들이 하나 같이 했던 말이 있다. 이런 행사를 기획해줘 감사하다는 거다. 이게 뭐 대단한 그런 프로젝트인가, 오늘을 어제와 똑같이 살아갔고 내일도 별반 다르지 않는 삶일 텐데 그 가운데 귀한 무언가를 이뤄냈단 점이 각자에게 기특함으로 돌아왔지 않았겠나 싶다.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면 되는 거니깐.
내가 지금 쥐고 있는 건 평생 누릴 수 없다. 또 내가 잘나서 혹은 좀 잘해서 성취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인지하지 못했던 여러 도움이 켜켜이 쌓인 결과란 걸 알아야 한다. 너흰 마음에 여유가 있으니 그런 딴짓도 할 수 있었지라고 한다면 당장 집 밖에 나가 누구든 붙잡고 물어보면 된다. 나 되게 여유있다 말할 이 아무도 없을 거다. 처음이 어렵다. 어떤 모양과 크기든 상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걸 필요로 하는 누군가 혹은 공동체가 있다면 나서보자. 두서없이 주저리 떠드는 내 마음이 뭔지 알아차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