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by Paul
제품이 배송되자마자 씻지도 않고 어머니 회사로 갔다. 그리 급한 건 아니었지만 남은 하루를 보내며 기분좋은 뿌듯함으로 채워가셨으면 좋겠단 아들의 소소한 마음이랄까. Paul 제공

이번주 어느날 늦은 퇴근을 한 뒤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잠이 오지를 않았다.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를 열었다가 문득 임직원몰에서 스마트워치가 할인하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얼마 전 그 글을 봤을 땐 그냥 넘겼는데 다시 궁금해져 사이트에 접속을 해봤다. 정가보다 약 40% 이상 저렴하게 판매하고 있었고 쿠팡보다도 훨씬 낮은 가격이었다.


난 무언가에라도 홀린듯이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빨리 주문해야 주말이 오기 전에 제품을 수령할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 말이다. 안전하게 결제가 완료된 것을 확인한 시간이 새벽 1시가 가까웠을 무렵이었다. 잠을 포기하고서라도 새벽에 끝내 주문 버튼을 눌렀던 이유는 뭐였을까.


어머니가 쓰고 계신 스마트워치는 아버지에게서 받았던 것이다. 정확히는 아버지가 오래 전부터 사용하고 계셨던 거다. 그 스마트워치는 내가 선물해드린 것으로 이젠 호환조차 제대로 되지 않을 지경에 이른 물건이다. 지난해 내가 휴대전화를 바꾸면서 최신형으로 샀던 스마트워치를 따로 중고거래 없이 아버지를 드렸다. 그래서 원래 쓰셨던 걸 스마트워치가 필요하지 않았던 어머니께 드렸던 거다.


오래 전 손목 수술을 하신 어머니는 그 흉터를 가릴 무언가를 필요해 하셨다. 처음엔 팔찌도 해보셨지만 이내 불편하다며 그냥 다니셨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거라도 착용해보자 싶어 갤럭시핏이라는 스마트워치를 표방하지만 전자 팔찌에 지나지 않은 기기를 얹고 다니셨다. 이것도 내가 구매해드린 것인데 본인은 스마트워치가 절대 필요하지 않다며 크고 작은 협상을 벌인 끝에 겨우 사다드린 것이었다.


그러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게 되셨는데 어쨌든 이전 기기보다 최신형(?)이니 적잖은 기능들을 익혀 사용하셨다. 정년 퇴직을 앞두고 계신 나이지만 전자제품은 나 못지 않게 좋아하고 잘 다루는 어머니셨다. 그래서 슬쩍 최신형으로 사주겠다 말을 건넸던 적이 있었는데 당연히 어머니는 거절하셨다. 절대 필요하지 않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약 1년 가까이가 흐른 것이다. 어차피 차고 있을 스마트워치, 가장 최신형으로 기기교환만 이뤄지는 거니 어머니 의사를 물어보지 않고 샀다. 다행히 내가 쉬는 날 배송이 됐고 점심시간에 곧장 어머니 회사로 찾아갔다. 왜 왔냐는 어머니 물음에 물건으로 답해드리니 “우와 너무 이쁘네”란 반응이 돌아왔다.


물론 집에 와서 천천히 교환을 하면 됐지만 이날 일정이 있던 터라, 그리고 아무리 기기를 잘 다루시는 어머니라도 초기 설정은 내가 해드리는 편이 낫다 싶었다. 재빨리 설정을 마치고 손목에 스마트워치를 감아 드렸다. 어머니는 이 제품 이름이 뭐냐며 곧 밥 먹을 때 만나는 동료들에게 자랑하겠다고 하셨다. 이후 가족 단체대화방엔 이것저것 기능을 말하며 다채로운 인증샷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휴대전화를 비롯해 무선이어폰과 이번 스마트워치까지 모두 내가 사드렸다. 이 모든 것이 어머니에게 전달될 때까지 한번도 빼지 않고 같은 말씀을 하신 바 있다. 나는 필요 없고 있는 것 계속 쓰면 된다고. 내가 구매해 드리면 돈을 너무 많이 썼겠다며 연신 고마워하셨다. 한평생 자신의 것을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으셨지만 그 순간 만큼은 어린애처럼 여러 곳에 자랑을 늘어놓기도 하셨다.


사실 이번 선물 전달식은 좀 슬픈 마음이 들었다.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스마트워치를 전달하기 위해 방문했던 자리에서 어머니를 마주보고 있으니 꽤나 왜소해지신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가 장성해 직장생활을 한 지가 수년이 흐른 만큼 비례한 것인데 알면서도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고 있었단 점이 죄송했다. 참 많이 말이다.


얼마의 돈이 들든 이런 선물을 해드리는 건 당연하다.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내게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아낌없이 베풀어주고 계시지 않나. 갚을 수 없는 게 부모님 은혜라고 하는데 작은 것이라도 내게 연락해 고맙다고 하시는 부모님의 말이 최근 들어 남몰래 눈물을 훔치게 되는 것 같다.


일개 직장인이 뭐 그리 대단한 능력이 있겠나. 다만 누구나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회사에 다니며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많은 것이 있고 그 경험들은 이제 어쩌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게 됐다. 내게 당연한 일상이 나를 길러주신 부모님은 어색하다면 그것 만큼 마음 좋지 않은 경우가 있겠나. 반에 반이라도 보답하지 못하겠지만, 또 물질이 부모님의 헌신과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겠지만 할 수 있음과 이제는 내가 더 채워드릴 수 있단 감사를 주저하지 않고 채워가겠다 곱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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