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참히 꺾여버린 성실

by Paul
Screen Shot 2022-03-29 at 10.12.46 PM.png 꼼꼼히 메모하며 취재하라고 선배가 건네준 기협 수첩. Paul 제공

성실이란 뭘까 생각해봤다. 저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게, 그래서 속한 공동체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 아닐까. 누군가 내게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건 내가 그것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된다고 결론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지난날을 돌아보면 솔직하게 주어진 일들을 두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산적한 일들 가운데 무언가 기대한 만큼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Due'를 뒤로 미루거나 포기한 적은 없다. 일을 준 주체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만큼 중요한 게 해냈을 때 뒤따르는 나의 발전이었으니까.


현업을 처음 경험했던 인턴생활 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성실은 지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조직도에 따라 가장 막내인 인턴이 출근시간에 늦지 않아야 한다는 건 당연했다. 이와 별개로 나라는 사람을 증명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첫 출근날부터 퇴사하는 날까지 한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다. 아주 짧은 기간동안 'IN'하고 'TURN'하는데 거대한 프로젝트에서 특별한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리 만무하지 않은가. 당연한 것이지만 무탈하게 그것을 해냈을 때 강한 인상을 줄 수 있다고 봤다. 실제로 수년 뒤 "그때 성실해서 떠오르더라"며 경력직 오퍼가 들어왔으니 내 작전은 성공한 셈이었다.


기자생활을 갓 시작했을 때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성실은 정직하게 취재하는 것이었다. 앞선 꼭지들에서도 언급했듯이 많은 매체에서 다룬 이야기라면 그 내용에 오류가 있을 확률은 매우 낮다. 그래도 다양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직업이란 본질 속 남이 들은 이야기를 마치 내가 들었던 것처럼 포장할 수 없지 않은가. 이에 연예부를 출입했을 땐 "확인중"이란 아주 짧고 간단한, 물어보기도 매우 민망한 이 말 한마디를 직접 꼭 들은 뒤에야 기사를 썼다. 나를 많이 아껴주셨던 한 선배는 "그래서 진짜 기자다"며 나를 추켜세워주셨다.


이후 기자생활을 이어가며 내가 실천했던 성실은 끊임없이 사부작거리는 것이었다. 세상을 놀래킬 만한 특종을 한다는 게 어디 쉽나. 이건 고사하고 수년간의 기자생활 동안 단독 하나 못해본 선배들도 많다. 난 처음부터 '역량이 부족해서 못 할거야'란 제한을 두지 않았다. 다만 내게 주어진 바운더리 내에서 최선을 다해 발제를 했다. 이왕 시작한 기자밥, 적어도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족적을 남겨보고 싶었다. 그래서 하루 가운데 잇단 터지는 이슈들을 열심히 쫓으며 내 바이라인이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웬걸, 난 뜻밖의 암초를 만나 표류하고 있다. "여기로 오면 모두 사표를 쓰겠다"는 후배들의 엄포로 타 부서 전출에 실패한 선배가 우리 부서로 온 다음부터였다. 이 선배를 경험한 전례가 있던 팀 선배들은 나를 포함한 동기들에게 "부디 휘말리지 말고 페이스 조절 잘 하라"는 뼈있는 조언을 건네주셨다. 네 달이 지난 현재, 우리는 존중이 없는 현장 속 그저 기사를 생산하는 기계가 됐다. 어쩌다 회사에 들어가 팀 선배들과 커피를 마실 때면 잡코리아에 뜬 타 매체 결원 소식이 가장 뜨거울 뿐이다.


사회생활은 내 맘대로 되지 않은 '마라맛'이니 언젠가 다가올 봄날을 기대하고 있었다. 다른 선배들처럼 나도 내 자리에서 역할을 묵묵히 다하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최근 본인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무참히 짓밟는 타깃으로 내가 선정됐다. 그날 따라 발제 될 만한 이야기가 없어 기사를 별로 작성하지 못했던 어느 새벽 당직 날, 퇴근이 한참 지난 뒤 문자로 말도 안 되는 기사량을 요구하며 "가만히 있지 말고 부지런히 찾으라"는 통보가 날라왔다. 이 문자를 보는데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며 정직하고 성실히 일해온 건 아니었지만 스스로 대견스럽게 여겼던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이같은 굵직한 상처를 하나씩 갖고 있는 팀원들은 사건 발생 직후 "열심히 하는 거 우리 모두가 다 알잖아"는 위로를 나눈다. 그리고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며 다음날 근무를 걱정한다. 가장 좋아하던 일이 하나도 재미없어진 후배들의 사기는 이렇게 땅바닥을 헤매고 있다. 매일 아침 노트북을 여는 게 가장 부담스럽고 싫은 일이 됐으니 타자를 두드릴 때마다 얼마나 깊은 한숨이 순간순간을 감싸는지 어림잡아 짐작 가능할 것이다. 난 문자를 계기로 더 이상의 애정있는 발제는 하지 않고, 아니 하지 못했다. 수화기를 들고 혹은 차를 끌고 여기저기 수소문하는 취재 역시 없었다. 무미건조한 보도자료만 내 기자페이지에 채워져가고 있는 중이다.


지인과 만남에서 싫은 소리를 잘 하지 않는 내가 어느새 불평과 불만을 줄줄이 늘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랑스럽게 여겼던 사원증을 무표정으로 만지작거리는 날이 많아진 데 따른 여파였다. 성실히 걸어온 길을 한순간에 부정당하니 별다른 애정 없이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다닌다는 여느 사람들이 말이 이해가 간다. 먹고 살아야 하는데 아무리 취업 사이트를 뒤져봐도 할 줄 아는 게 이것 뿐이기에 그렇다. 과연 즐겁게 그리고 진심으로 내 기사의 문장들을 적어내려갈 수 있는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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