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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Mar 27. 2022

13년 후 다시 한자리에

나도 친구들도 어른이 됐구나를 느꼈던 건 다름 아닌 비싼 메뉴를 잔뜩 먹고 나오는 길이었다. Paul 제공

지난 2009년 하반기쯤 동네 독서실 문턱이 닳도록 열심히 드나들었던 4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각자의 삶을 대충 취합하니 하루가 멀다하고 일에 매몰돼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또래 젊은이들이 잔뜩 모인 서울숲을 모임 장소로 정했다. 아무리 매일 사용하는 방이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가 쌓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창문을 활짝 열고 신선한 공기로 이를 날려버리는 환기가 필요하지 않은가. 젊은이들이 많다고 해 그 기운을 전해받는단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그들처럼 주말을 여유롭게 보내고 있다' 정도는 얻을 수 있겠다 싶었다.


메뉴는 파스타도, 피자도, 커리도 아닌 밥이었다. 만나기 전 메뉴를 정하기 위해 각종 가게들을 읊는데 '밥이 최고지' '아묻따 밥' 등의 말들이 터져나온 데 따른 선택이었다. 예약을 걸어둔 시간이 임박하자 하나 둘 약속 장소로 모였고 그렇게 아주 오랜만에 4명이 식사를 하게 됐다. 음식이 나오고 밥을 먹기 시작했는데 문득 중학교 3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아마 그때도 이같이 둘러 앉아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시간이 훌쩍 지나 서른을 앞두고 다시 모여 밥을 먹고 있으니 기분이 참 묘했다.


이후 카페로 옮겨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실 4명이서 모인 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아서 어느정도의 어색함이 있을줄 알았다. 그런데 마치 지난주에 만나고 오늘 또 만난 것처럼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친구놈 하나가 유학을 가면 이렇게 옹기종기 모일 수 있는 날을 기약하기 힘들단 걸 잘 알아 자리를 파할 시간이 다가오는 게 퍽 서운했다. 대화 주제가 특별한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회사 이야기, 앞으로 어떻게 살건지 등 이 친구들이 아니어도 어디선가 들을 수 있는 말들 뿐이었는데.


다른 약속이 잡혀있던 친구 하나가 떠났다. 또 다른 친구도 온라인으로 학회가 예정돼 있어서 섣불리 저녁 계획을 잡을 수 없었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학회를 들어야 한다던 친구를 다른 카페로 데려다주고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는 집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건대입구에서 고속도로를 올렸는데 아까 들었던 아쉬운 마음이 점점 커져갔다. 옆에 앉은 친구에게 이 마음을 전하니 그는 곧장 학회를 듣고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우리는 핸들을 꺾어 다시 서울숲으로 돌아갔다. 학회를 끝마친 친구가 합류했고 3명은 한남동으로 향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다시 모인 게 아니었다. 학회를 들었던 친구가 자취를 하는데 어차피 집으로 가면 혼자 먹어야 하지 않나. 이왕 나온 김에 외롭지 않게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고, 또 이왕이면 주말 분위기를 내기 좋은 한남동이 좋지 않겠나 싶었다. 아 그래도 목적은 있었다. 점심은 밥을 먹었으니 저녁은 외국 음식을 먹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울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거리를 하염없이 거닐던 남자 3명은 맨날 지나만 다니고 한번도 들어가지 않았던 웬 스페인 식당에 정착하게 됐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Hola'(안녕)란 인삿말이 들려왔던 그 식당은 메뉴에서도 꽤나 이국적이었다. 스페인을 가본 적이 없던 우리 셋은 대충 들어봤을 법한 이름의 음식을 잇따라 주문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온 음식들은 고작 손바닥 크기의 그릇에 나와 적잖은 당황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계산서를 받아들고 나서 또 조금 놀랐는데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나오지 않았단 것과 직장인들이라고 다들 '이쯤이야'라고 생각하는 게 웃겼다. 이만큼 세월이 지났고 앞으로도 금방이겠구나 싶은 씁쓸함도 함께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하나도 막히지 않았다. 난 열심히 가속 페달을 밟았고 유학을 떠나는 친구놈 역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차안을 감싸는 침묵이 계속되던 중, 친구가 "다들 그래도 자기 하고싶은 일 하면서 살고 있네"란 말을 쓱 던졌다. 나는 이 말에 "그러게"란 짧은 답변을 건네줬다. 대화라고 하기엔 매우 간결한 우리의 나눔 뒤엔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일 때문에 많은 한숨을 내쉬는 그런 요즈음이었는데, 이날의 기분은 '알차고 즐거웠다'는 마치 어린아이들이 즐겨하는 소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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