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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03. 2022

학교 밖 롤모델이었던 그 남자

모금 캠페인을 위해 사업 대상자 인터뷰 차 광주로 달려가던 SRT에서 썼던 다른 대상자 인터뷰. Paul 제공

지난 금요일 모처럼 일찍 마친 뒤 아주 오랜만에 충무로역 주변을 걸었다. 꼬박 3년을 줄기차게 드나들었던 곳이었는데 이곳저곳을 흘기며 걷고 있자니 지나간 시간들이 스쳤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가게들이 잇따라 들어선 걸 목격할 수 있었는데 퍽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추억을 곱씹으며 도착한 곳은 자취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쌀밥을 만드는 회사였다. 1층 로비에 들어선 빵집과 카페는 리모델링을 해 이전과 색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다행히도 한켠에는 아직도 삼삼오오 모여 무언가의 주제를 두고 신나게 떠들었던 의자들이 남아 있었다. 마치 졸업생이 모교를 방문한 것 마냥 그 의자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다.


퇴근시간이 훌쩍 지났음에도 여전히 회의에 파묻혀 있던 그는 지난 2017년 11월 초에 만나게 됐다. 한 캠프의 실무 담당자와 대학생 봉사단으로 만난 것이었는데 인연이 시작된 계기가 참 재밌다. 당시 모 아나운서가 특강을 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질문시간을 가진 바 있다. 이땐 한창 '오바마 기자회견'이 회자될 시기였고 후회를 남기기 싫었던 난 별다른 망설임 없이 평소 궁금했던 걸 질문했다. 한참 뒤에 그가 내게 말해주기로, 질문했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아 도대체 누구였는지 살펴봤다고 했다. 그리고 함께 갈 수 있는 또 다른 청년으로 인지했더란다.


실제로 이 캠프가 끝난 뒤 회사가 진행하는 국내외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글로 쫓았다. 이를 위해 택시와 지하철은 물론이고 SRT, 비행기 등 각종 교통수단을 섭렵하기도 했다. 가장 젊게 빛나는 청춘을 여기에 불태운 셈이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한 뒤 내게 돌아오는 건 사실 특별히 없었다. 쏟은 시간에 비해 주어지는 원고료는 턱없이 부족했으니 언제라도 그만두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막차가 끊겨 새벽총알택시를 타면서 열심을 낼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던 그는 맡은 사업을 위해 진심으로 고민할 줄 알았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든 보기좋게 포장해 빨리 일을 마무리하려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 물론 내가 다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겠으나, 적어도 현장에서 마주한 그의 모습은 자신보다 사업 대상자들을 더 우선순위로 생각하며 헌신하고 또 헌신했다. 서포터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대학생들이 풀리지 않는 난제를 만나 고민할 때 발벗고 나서 꼬박 몇시간을 함께 머리를 맞대주었다. 커피든 밥이든, 낮이든 밤이든 말이다.


이 자리에서 말하자면, 꿈이 모호하던 그때 그시절 내 롤모델은 그였다. 꼭 같은 사회공헌 분야가 아니라도 진심으로 하고 싶고 평생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나가는 그의 모습이 멋있었기 때문이다. 채 세상을 다 경험하지 못한 대학생의 시선이었으나 뭔가 이런 직장인이 된다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의 후배가 되기 위해 취준을 고민하던 시절 혼자서 이런저런 방법을 고민하기도 했었다. 기업은 사회공헌 직무를 채용하지 않고 난 사회복지를 전공하지 않았다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이내 꿈틀거림을 접었다는 안타까운 사연도 전해본다.


지난 금요일로 돌아와 약 1년 만에 마주한 그는 어느새 선임 직군이 되어 있었다. 그는 이같은 직군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로 지난날 나를 포함한 대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을 회상했다. 그러면서 우린 "벌써 5년이 흘렀다"는 말을 한목소리로 내뱉었다. 조만간 그와 같은 30대 그룹으로 편승되니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꼬꼬마 대학생 시절을 더 알차게 보내지 못한 것 같다 야속함을 공유하기도 했다. 밥을 같이 먹기로 하고 만난 자리였는데 끝내지 못한 일로 마감한 식당 테이블에서 30분을 이야기로 채워야 했다. 일주일 동안 참 피곤하고 지쳤었는데, 그렇게 떠드는 자리에서 왠지 모를 위로가 들었다. 마치 지난주에도 함께 일을 했고 이번주도 그랬으며 다음주도 새 프로젝트를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은 느낌과 함께 말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내 글들에 그는 짧은 한문장 혹은 이모티콘 등을 보내곤 한다. 그를 둘러싼 주변 가운데 무심코 보낸 작은 반응일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겐 찬란했던 내 청춘을 후회없이 보내게 해줬던 시간들을 찰나라도 되짚게 해주는 기폭제가 된다. 이윽고 치열한 세상이란 전투로 다시 나갈 수 있도록 단단한 재정비를 하게 만드는 힘이 생긴다. 이번 만남을 파하고 시간이 흘러 글을 쓰는 현재까지도 내 맘 깊숙하게 자리해 떠다니는 소소한 기폭제가 있다. 힘들다 한숨을 깊게 내쉬던 내게 "그래도 8년 동안 버티니까 됐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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