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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05. 2022

아들의 의미있는 티켓팅

말 뒤에 'ㅋ'만 쓰는 건 젊은이만 하는 건데 누가 가르쳐줬는지 신나신 게 분명한 저녁이었다. Paul 제공

2주 전 사내 인트라넷 게시판에 한 글이 올라왔다. 임직원들에게 봄을 맞아 기획한 음악회 초대권을 배부한다는 것이었다. 이 글은 모두가 퇴근한 시간인 저녁 6시 반쯤 올라왔었고 내가 확인한 시간은 애석하게도 다음날 출근해서인 오전 9시였다. 임직원들 손이 그렇게 빠른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 가고 싶었던 오케스트라 연주회는 일찌감치 마감됐고 차순위를 고려해 남은 연주회에 대한 신청을 후다닥 했다. 그리고 오후쯤 연주회 담당자로부터 선착순에 당첨됐다는 메일을 받을 수 있었다.


티켓을 받아들고 순간 고민에 빠졌다. 누구와 갈 것인가. 내가 아주 한가했거나 지금보다 젊음이 불타는 나이였다면 함께 즐길 수 있는 사람을 꾸역꾸역 찾아내 참석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두가지 경우의 수를 쫓지 못할 걸 예감했던 난 치열하게 쟁취한 티켓의 용처를 심도있게 저울질 해야 했다. 사실 깊은 생각에 빠지지 않아도 됐다. 티켓을 주고 싶은 대상이 단번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성악을 전공한 동생과 중학교 3학년 때 피아노로 예고 진학을 진지하게 고려했던 나, 두 사람의 피가 어디로부터 흘러들어 왔겠는가. 아주 어린 우리 둘을 데리고 음악회 이곳저곳을 열심히 다니셨던 건 다름 아닌 부모님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는 동생을 따라 알 수 없는 이태리어가 섞인 노래를 부르시며 설거지를 하신다. 물론 어머니도 최근 당근마켓에 들어가 전자 키보드를 검색하는 일이 잦아지셨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원하는 노래를 연주하시는 게 소원이라는 말을 덧붙이시면서 말이다. 이처럼 음악을 좋아하시는 두분이 코로나19 여파로 예술의 전당을 찾으신 지 까마득하니 좋은 선물이 될 거라 생각했다.


특히 어머니를 위해서였다. 아버지와 나는 일로, 동생은 대학원 공부를 위해 일주일 동안 서울을 오가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사서교사로 재직 중이신 학교가 집 근처였기 때문이다. 동생과 내가 졸업한 모교이기도 한 직장에 나가기 위해 아침 7시반쯤 일어나셔서 출근을 하시고 4시 반쯤 퇴근을 하셨다. 자식들이 장성했으면 나름의 자유시간을 즐길 법도 하신데 어머니에겐 어제까지도 별다른 '누림'이 없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가족들의 저녁 준비란 2차 출근이 기다리고 있어서다. 미리 밝혀두자면, 두명의 자식은 평일 저녁 식사를 대개 밖에서 해결한다. 어쨌든 저녁이 지나면 밤이 되고 다시 아침이 밝아 출근을 하시는 어머니셨다. 동네를 벗어날 기회가 없는 것이다.


티켓을 넘긴 나는 오늘 아침까지도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귀찮은 몇가지 잔소리를 늘어놨다. 티켓을 챙겼는지, 저녁은 어디서 먹을건지, 이왕이면 맛있고 값비싼 음식을 먹으라 등이었다. 혹시 연주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사용할 주차권이 임직원 할인 불가라고 나오면 꼭 전화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휴 알아서 할게"라며 손사레를 치셨지만 난 어머니가 퇴근해 아버지를 만날 때까지도 카톡을 줄지어 보냈다.


근래 우리 가족 단체 대화방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했던 건 내가 공유한 기사들이었다. 아니면 기사가 나오기 전 세상 이야기를 발빠르게 알 수 있는 '받은글' 정도. 중요한 이야기는 대체로 전화를 걸어 처리해서다. 오늘 가족 대화방에선 어머니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오랜 만에 서울을 나오게 됐다' '아빠 회사 근처에 오니 옛 생각이 난다' 등 어머니의 독백이 이어졌다. 아버지와 함께 촬영한 사진들도 잇따랐고 연주회 전 티켓을 들고 남긴 인증샷도 포함됐다. 아주 꽉 막힌 퇴근 도로 위에서 카플레이로 연결된 자동차 화면 속 이 대화들을 보고 있자니 울컥하기도 했다. 새삼 부모님의 얼굴에 이같은 환한 미소를 언제 봤나 싶기도 하고.


연주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신 부모님을 붙들고 이것저것 질문 세례를 날렸다. '맨 앞자리였는데 어땠냐' '오케스트라가 연주는 잘 했냐' 등 시시콜콜한 주제들이었다. 부모님은 "박수를 얼마나 치던지"라며 꽤 시크한 답변을 내놨다. 그러곤 내 질문에 명쾌한 답변을 주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방 건너에 있는 부모님 방에서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분명한 건 직장에서 찌들어 힘들었던 하루 가운데 적잖은 위로와 힘을 얻으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난 다음 임직원 티켓 획득을 위해 손 마디마디를 조심스레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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