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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23. 2022

평범했던 직장인의 일주일

주말 오전에 여유롭게 일어나 드라이브th루로 얻어낸 커피를 마시며 세차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해본다. Paul 제공

딱 두달 전까지는 서울로 출근을 하기 위해 새벽 6시반에는 일어났었다. 부산스럽게 준비하고 적어도 7시에는 집을 나서야 1시간여 정도 만에 서울에 진입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절대로 지각을 하지 않겠다는 사회 초년생의 의지도 조금 담겼었다.


이번 일주일을 복기해봤다. 당직으로 회사를 오갔어야 했는데 집을 나가야 했던 7시에 일어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보통 출근길의 빠르고 느림 정도를 8시부터 10분간 전파를 타는 MBC라디오 '굿모닝FM 장성규입니다'의 코너 '김가영 캐스터의 깨알뉴스'로 판단하곤 한다. 경기에 사는 나는 이 방송이 나올 때면 경부고속도로를 벗어나 올림픽대로를 타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이번주에는 매번 깨알퀴즈를 맞추며 현기차 양재사옥을 지나갔다. 정시에 출근한 적이 없다는 말이다.


점심시간에는 무조건 회사에서 멀리 떨어졌다. 지난 월요일 퇴근한 뒤 선배와 망원동을 간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기엔 철저한 계획이 필요했는데 바로 점심 메뉴 선정이었다. 이 과정에서는 '네가 먹고 싶은 걸 골라라'하는 극한의 배려가 이어지는데 불필요한 시간 낭비였다. 이에 함께 출근한 동기와 협의해 이번주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원래는 쳐다도 보지 않는 곳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주일 메뉴가 괜찮았기 때문이다. 동기와 나는 매번 11시쯤 기사를 털고 구내식당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15분여 만에 식사를 해치운 뒤 빠르게 회사를 벗어났다. 자유를 단 몇 분이라도 빠르게 누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카페 선택 권한은 주로 내게 있었다. 동기는 커피를 마시지 않기에 그랬다. 회사 주변에 이른바 '까리한' 카페들은 이미 섭렵했던 터라 새로운 곳을 물색하기에 애를 먹기도 했다. 답이 없다면 답을 만들면 되지 않은가. 근처가 아닌 근처의 옆으로 넘어가면 될 일이었다. 다행히 구름 한점 없는 맑은 날씨 덕분에 걸어서 30분 정도 떨어진 새로운 카페들을 잇따라 방문할 수 있었다. 혹시라도 선배를 마주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어쨌든 멀리 떨어지는 것이 중요했다. 데스크가 호주의 듁스 원두 따위로 아메리카노를 내리는 맛집을 검색해 찾아올리 만무했지만 말이다. 여차저차해서 찾아간 비교적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카페에서 한 두시간쯤 동기랑 멍을 때리고 있으면 어서 퇴근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그냥 지금 퇴근할까?"를 몇번이나 말했는지.


늘 그랬지만 이번주는 더더욱 정시에 퇴근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차피 쓸 기사는 다 썼고 특별한 이슈가 없으면 그냥 대기하는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회사로 출근했는데 약속이 없는 날의 저녁은 그냥 구내식당을 먹는다. 임직원 할인을 받으면 단돈 4000원인데 요즘 같은 세상에 이 값을 지불하고 고기류의 메인 반찬이 있는 백반을 어디가서 먹을 수 있겠는가. 저녁을 먹는 시간은 비공식적인 퇴근이기 때문에 옆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속보를 위한 노트북이 준비돼 있었다.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이 직업의 모토가 아주 나이스하게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요즘 퇴근시간에 고속도로를 타면 코로나19가 끝나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오후 6시 전이든 후든 차가 한 달 전과 비교하면 무척 많아졌기에 그렇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한 치열한 눈치싸움을 해야 했는데 일부 몰상식한 차주들의 운행으로 내 성격의 밑바닥을 보는 순간도 더러 있었다. 배려와 양보는 운전 중 선행돼야 할 필수 덕목이지만 출퇴근길에서의 맹목적 양보는 그저 호구에 불과한 시선이 잇따라 존재하기에 나를 지키기 위해선 강해져야(?) 했다. 어쨌든 이같은 과정을 거쳐 집에 도착한 시간은 회사를 나온 지 2시간여가 지난 후였다. 이만하면 그냥 출가를 해도 되는 충분한 명분이 있는 셈인데 어학연수를 하며 '집 떠나면 개고생'을 뼈져리게 느낀 난 별다른 추가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멋진 취미들로 남은 시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 대학생 땐 생각했다. 그러나 생전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업계 관계자와 하루 종일 입씨름하며 기사를 쓰면 '진이 빠졌다'는 말로는 표현을 다 할 수 없을 정도의 정신 상태가 형성된다. 이번주는 특히나 더 피곤함을 느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빨리 잠들고 싶어도 오후 11시 50분에 예정된 전화영어를 마쳐야 했다. 물론 수업 시간을 조금 앞당겨 더 일찍 잠들 수도 있는데, 담당 부서에 전화해 변경 요청을 하는 것 조차 일로 느껴져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사실 수업을 마치면 자정쯤이라 곧바로 잠이 들면 7시간 정도 잠을 잘 수 있다. 이상하게도 지난 금요일까지는 비교적 많이 잤다 해도 아침이 너무 힘들었다. 그냥 다 제끼고 침대에 다시 눕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으니깐. 당연히 이를 현실화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그저 '토요일까지 몇일 남았지'를 세어보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전쟁 같던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토요일이 됐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시계는 오전 11시쯤을 가리키고 있었다. 잘때 한번도 깨지 않았으니 한주가 얼마나 고됐는지 알만 하지 않나. 침구를 정리하며 창밖을 보는데 날씨가 매우 좋아보였다. 딱히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닌데 화창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보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이윽고 부모님이 차려주신 점심을 먹고 집을 나와 목욕탕을 갔다.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데 문득 '이래서 시원하다는 말이 나왔구나'하는 아저씨 같은 소회를 곱씹었다. 기분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썩 가벼워진 몸을 이끌고 주유소로 가 기름도 채웠고 세차도 했다. 그리고 젊은 후배들이 가득한 학교 앞 카페로 와 노트북을 열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밝혀두자면 오늘 쓸만한 발제(?)를 찾지 못했다. 이번 한주 동안은 써내려가고 싶은 이슈가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보통 출근해서 선후배들과 나누는 이야기인 "아 오늘 뭐가 없네"를 브런치 홈페이지를 열어두고 커피를 한참 홀짝거리며 되뇌이고 있으니 '영락없다'는 단어에 큰 공감이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지극히 평범했던 이 일주일을 살아가고 싶은 다른 수많은 사람이 있겠지 싶었고 "감사하자!"를 외쳐봤다. 적어도 이 카페에 옹기종기 모여 열심히 과제를 하는 후배들에겐 욕을 하며 꾸역꾸역 보내는 직장인의 삶이 언젠가 도달하고 싶은 일련의 목표일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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