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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25. 2022

다시 들춰 본 어릴적 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수년간 두드리지 않았음에도 손이 기억하고 있음에 감사해봤다. Paul 제공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 '당근마켓'으로 종종 소정의 수익을 올리시는 어머니가 근래에 자주 검색하신 게 있었다. 다름 아닌 전자피아노였다. 5살 때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오며 사둔 피아노가 있는데 이제는 잘 치지 않아 애물단지가 된 탓이었다. 더군다나 층간소음으로 하루가 멀게 뉴스가 나오는 요즘인데 모두가 출근한 낮이라도 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 아래 윗집이라면 썩 반길 순 없는 피아노 소리였다. 어머니의 목표가 다시 반주법을 익히는 것이었는데 얼마 전 드디어 집에 전자피아노가 들어왔다. 물론 중고가 아닌 새것으로 말이다.


아주 오랜만에 악보를 접하신 어머니는 동생이 부재중일 때 나를 찾으셨다. 이따금씩 내 방에 들어오셔서 여러가지를 물으셨는데 아예 피아노 앞에 앉아서 반주법을 알려드리기도 했다. 그리 대단한 무언가를 공유했던 건 아니지만 헤드셋을 쓴 어머니의 얼굴은 꽤나 즐거운 표정을 하고 계셨다. 새삼 피아노 연습을 하던 나를 뒤에서 지켜보시던 어머니와 나의 어릴적 시간이 떠올랐다. 이제는 모습이 반대로 바뀌었는데 세월이 이만큼 지나간 것에 미묘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피아노를 시작했던 건 5살 때부터였다. 유치원을 마치면 동네 작은 피아노 학원으로 달려가곤 했는데 여느 남자들과 다르게 퍽 잘 맞았던 것 같다. 초등학생이 되면 더러 포기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한다고 하던데 난 게임보다 큰 재미를 느꼈었다. 태권도나 수영 등 유행처럼 가지게 되는 취미는 아니었던 것이다. 중학교를 올라가고서도 피아노를 계속 쳤었는데 3학년 무렵 고등학교를 선택해야 할 기로를 마주했을 때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음악 선생님은 진지하게 이런 말씀을 건네셨다. 열의가 있는 것 같으니 예술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본격적으로 시작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그때 피아노를 계속 쳤다면 지금 내 삶은 달라졌을까.


어머니가 내게 피아노를 치게 만드신 목적은 분명했다. 교회에서 반주로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난 초등부, 중고등부는 물론이고 대학생이 되어선 대예배 반주자로 피아노를 쳤다. 미션스쿨이었던 고등학교에서도 3년 내내 매주 월요일 채플 시간에 반주를 했다. 어머니는 딱 여기까지 원하셨다. 더 이상 나아가는 건 단호하게 반대하셨다. 일례로 중학교 시절 집 근처에 피아니스트 이루마 콘서트가 열린 바 있는데 어머니는 티켓을 끊어주지 않으셨다. 연주회에 가면 내가 피아노를 전공할 것이라고 선언할 게 불보듯 뻔하다는 말과 함께.


어머니를 원망할 수도 있었지만 음악이  길이 아니라는  스스로 깨달을  있었다. 성악을 전공한 동생은 연습실에서 3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고 노래를 부르곤 했다. 반면 나는 20여분 동안 피아노를 치고 나면 금방 흥미를 잃었다. 세계적이란 말은 고사하고 국내 저명한 피아니스트가 되기 위해선 좁디 좁은 연습실에서 죽어라 건반만 쳐야 하는데 그건 못할  같았다. 그래도 오래도록 이어온 취미인데  생활을 다채롭게 꾸려가고 싶었다. 이에 투박한 음표와 가사들을 잔뜩 담은 노래를 만들어 어느어느 대회에 호기롭게 나가보기도 했다. 내가 이만큼   있다는  보여주고 싶었던  아니다. 그저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답할  있는 귀한 것이다를 나타내고 싶었을 뿐이다.


20대 중반을 넘어가며 피아노로 내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줄어갔다. 물론 활동은 찾아서 할 수 있었지만 치열한 취업시장에 던져진 한국 대학생이 호기로운 멀티 플레이어가 될 순 없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취업을 하고 난 뒤에는 피아노를 단 한번도 치지 않았다. 기사도 일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오면 잘 안써지기 마련인데 하물며 악기는 어떻겠나. 십수년 즐겁게 친 피아노를 손이 굳어 룰루랄라 치지 못하게 된다면 참 슬프겠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머릿속을 스쳐가기도 했다. 그러나 핑계를 좋아하는 게으른 직장인은 부모님 방을 매일 드나들면서도 그곳에 있는 피아노 커버를 한번도 열지 않았다. 그 결과,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의에 '딱히 없다'는 답변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현재로 돌아와 전자피아노가 들어온 뒤 그 앞에 앉아 소리가 잘 나오는지 몇번 뚱땅거려 봤다. 어제 저녁에도 일과를 마치고 돌아와 어머니가 건네주신 악보로 피아노를 쳤다. 역시 손이 굳어 이전처럼 현란한 코드는 나오지 않았고 여태 노력을 이어오지 않은 결과이지만 "아쉽네"라는 말을 내뱉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간만에 피아노 앞에 앉은 아들의 연주를 찍겠다며 휴대전화를 들이미셨다. 난 한사코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과거보다 서툴러진 아들의 연주는 여전히 어머니의 큰 낙인 걸 알지만 피아노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패기로웠던 고등학교 시절 내가 온데간데 없어진 까닭이었다.


다시 피아노를 제일 가는 취미라고 말하는 날이 올까 싶다. 내 손에 멋있는 반주법이 뜻대로 장착되지 않으면 추억 한켠으로 남았을 때가 차라리 좋았다는 자조적인 농담을 꺼낼 수 있어서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이루마의 'Kiss The Rain'을 외워 어디서든 쳤던 것처럼 한곡을 멋지게 완주할 수 있는 도전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든다. 피아니스트를 꿈꿨던 꼬맹이가 매일 몇천자를 써내려가는 글쟁이가 됐는데 혹시 모르지 않나. 연예부 선후배들 앞에서 이 곡을 왜 쓰게 됐는지를 리뷰하는 인터뷰이가 되어 있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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