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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27. 2022

올바른 칼날이라면 쫄지마!

아무리 받아도 적응 안되는 서류 중 하나다. Paul 제공

밤 근무를 해 늦게 일어난 어제 아침, 휴대전화에는 어머니의 문자가 남겨졌었다. 잠금을 풀고 확인해보니 "검찰청에서 온 우편이 있더라"는 내용이었다. 아차 싶었다. 까먹고 있었는데 이제야 처리가 돼 우편으로 결과를 받은 것이었다. 원래는 어머니에게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앞서 경찰에서 온 우편도 어머니가 먼저 확인했었다. 생전 '경찰' '검찰' 등 단어를 접하지 못했던 어머니는 받는사람에 아들 이름이 적혔으니 얼마나 놀라셨겠나. 그래도 사법기관에서 받은 두번째 우편이라 꽤 의연해지신 것 같았다. 기자를 자식으로 둔 부모의 숙명인 셈이었다. 이미 검찰에서 문자로 결과를 받았던 터라 어머니에게 "무혐의 처리 됐다"고 말씀드렸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한참 동안 걱정을 늘어놓으셨다.


연예부에 있던 시절,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던 연예인에 대한 단독 기사를 쓴 바 있다. 당시 연예부장이던 선배와 다양한 경로로 팩트체크를 한 뒤 기사를 출고했었다. 이후 각계각층의 다양한 반응이 잇따랐는데 해당 연예인은 사실무근임을 주장하며 입장문을 수차례 냈다. 여론의 질타는 줄지 않았고 결국 그 연예인은 나와 선배, 회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등을 거론하며 손해 배상 소송을 냈다. 이 시기에 난 다른 매체로 이직을 했을 때였는데 선배는 "내가 지시한 기사이니 책임을 져도 내가 진다. 걱정하지 마라"는 말을 건네셨다.


실제로 선배는 사건을 1차로 수사하는 담당 경찰에 "모든 조사는 내가 받을 테니 지시를 받은 후배는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전하셨다. 덕분에 사실관계 확인 차 몇번 연락을 받았지만 더 이상의 조사나 경찰서 방문은 없었다. 말이야 이렇게 쉽게 하지만 사실 심장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맨날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궁금한 사안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는데 그 반대가 되니 '취재를 당하는 사람의 기분이 이런 건가' 싶어 반성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 뒤로 절차를 거쳐 경찰과 검찰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당연히 결과를 공유받았을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보니 "더 큰 소송에 걸려봐야 한다"는 무서운(?) 농담을 던지셨다.


직장인에게 통하는 명언 한가지가 있지 않은가. 바로 '가늘고 아주 길게 가고 싶다'는 말. 기자라고 왜 안그러고 싶겠나. 가뜩이나 포털 사이트에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박아 기사를 쓰기에 더 그렇다. 좋은 게 좋다고 쓰기 쉬운 기사만 작성하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가득하다. 그러나 선배는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직업의 책무는 '외면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 보고 들은 것에 대해 기자란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렇게 작성한 기사가 올바른 칼날이었다면 나아가는 과정에서 갖은 풍파가 와도 결국 소기의 결과를 얻을 것이라 덧붙이셨다. 그동안 많은 데스크를 만났지만 이같은 진심을 전해준 선배는 없었다.


선배로서 현업에 있는 동안 마주하는 자랑스러운 순간 가운데 '저 후배가 내 후배'라는 말을 할 때도 속해 있지 않겠는가. 물론 선배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여부를 묻지 않았지만 이 사건 직후 좀 더 각성해 일을 했다. 얼마나 독하게 일했는지 한번은 홍보팀과 식사를 하면서 "진짜 궁금했는데 어떻게 이런 얼굴을 하고 그런 기사를 쓰냐"는 말을 건네받기도 했다. 그러라고 회사에서 기자 명함을 파줬고 펜대를 내 손에 쥐어준 것 아닌가. 나는 나의 일을 하고 그들은 또 그들에게 주어진 업무를 하는 것이니 분명한 사실을 발견했다면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방법을 배웠던 좋은 기회였다.


기사 하나의 무게는 매우 무겁다. 으레 작성한 기사로 주가 폭락이 돼 회사가 망할 수도 있으니까. 어떨 땐 선의로 쓴 기사가 사건에 연루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로 작용해 고통을 주기도 한다. 좋은 소식을 보다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한 역할 중 하나지만 어딘가의 이면을 들춰보는 일이 상대적으로 많으니 나타나는 사례들이다. 이따금씩 나오는 기사 오탈자에 데스크가 담당 기자에게 헐레벌떡 연락하는 모습을 보면 '아, 기사 영향력이 크지'란 말을 한 번 더 곱씹게 된다.


그래서 한동안은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하소연을 많이 하고 다녔다. 내가 하는 일이 특별하다는 게 아니라 아무리 사부작거려도 세상이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생전 얼굴도 모르는 누리꾼들이 트위터, 페이스북은 물론이고 각종 커뮤니티에 기자페이지 증명사진을 올려 세상에 있는 욕을 다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면 더 그렇다. 이럴 땐 언제까지 기자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매일매일 다채로운 이 직군에서 '대기자'로 취재를 다니는 선배들을 보면 답을 얻지 못한 고민은 한없이 깊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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