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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pr 28. 2022

치열한 전장 속 동료일 뿐

한 카페 굿즈샵에서 샀는데 최근 딱히 웃을 일이 없었어서 그랬는지 이 스티커가 눈에 들어왔다. Paul 제공

황당한 일화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2년 전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한 적이 있다. 평소와 다름 없이 회사 1층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사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별안간 휴대전화가 울렸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기자짓하면서 얻은 몇 가지 노이로제 중 하나가 바로 신원불상인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그래도 '010'으로 시작해 전화를 받았는데 다짜고짜 "내가 모 매체 10년차다"는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러더니 자신이 왜 전화를 걸었는지 이유를 나열하는데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네 기사가 메인에 걸려 내 기사가 보이지 않았다'였다. 통화 말미엔 여러 훈수를 두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자는 대단히 주제넘은 용감한 일을 했던 것이다. 직속 후배도 아니 타사 기자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담은 화풀이를 한 것 아닌가. 당시 조무래기 시절을 보내고 있던 나는 쫄리는 마음에 사수 선배에게 말씀을 드렸고 선배는 다른 선배에게 이 말을 전했다. 그 다른 선배가 내게 전화가 와서는 이런 말을 해줬다.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를 건 타사 기자는 이전 매채에서 자신의 동기인데 여기로 너무 오고 싶어했었다고. 평소 자격지심이 많아 주변을 힘들게 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주셨다. 그러면서 "다시 전화 오면 내가 아주 혼쭐을 내줄게"라고 덧붙이며 나를 위로하셨다.


어제 내가 근무했던 매체의 입사 동기, 후배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시간이 날 때면 종종 뭉치곤 했는데 최근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간만에 만난 자리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신나게 나열하는 장이 됐다. 물론 "일하기 싫다" "퇴근하고 싶다" 등이 대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말이다. 하루 종일 남들의 이야기를 다루다가 마침내 우리의 시시콜콜한 삶을 주고받으니 시간이 쏜살같았다.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는데 후배가 불쑥 꺼낸 말이 있었다. 바로 내가 겪었던 일화와 엇비슷한 경험이었다. 지금 매체로 오기 전 다녔던 곳에서 제목을 잘 뽑기 위한 특훈을 선배들과 진행했었다고 했다. 배운 게 어디 가겠나, 후배는 이직을 해온 뒤 기사를 작성할 때 제목을 그 어떤 기자보다 잘 뽑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이전 매체로 이직한 평소 친분이 있던 선배에게 '기사와 제목을 베끼지 말라'는 식의 연락이 왔단다. 이 내용이 담긴 문자의 첫 말은 "아직 연차가 낮아서 잘 모르겠지만"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이 오해가 어느정도 해결됐다고 했지만 후배의 늘어진 어깨는 당시 받았던 감정이 채 회복하지 못한 것 같았다.


편집을 하다가 취재부서로 넘어온 후배는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이날 밥을 같이 먹은, 평소 이런 종류의 칭찬을 절대로 하지 않는 내 입사동기도 "한번은 모두가 퇴근했는데 끝까지 남아서 취재원의 회신을 받아 기사를 마감하는 걸 보고 대단하다 생각했다"는 말을 내게 건넸을 정도다. 늦은밤 당직을 할때였음에도 회사 근처에서 일어난 시위 취재를 위해 저녁도 거르고 현장으로 나가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취재를 했다는 건 어제 만난 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는데 나와 입사동기는 기사를 읽으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 후배가 자랑스러웠기 때문이다.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배우 이영애 씨가 날린 대사를 모두 알 것이다. 후배에게 문자를 보냈던 기자의 기사에는 '에 따르면'이란 문장이 늘 등장한다. 출입이 아니라면 취재는 고사하고 소정의 확인과정 없이 포털에 올라온 기사를 베끼는 행위인 우라까이를 했다는 말이다. 본인의 일을 하기에도 벅찰 텐데 이제 더 이상 다른 회사로 후배도 아닌 기자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했다는 게 좀 웃긴 일 아닌가. 특별한 발제를 그대로 따라 기사 작성을 한 게 아닌데, 모두가 대응했던 이슈에 대해 파이를 주장할 수 있는 건지 정말 고개를 가로저을 일이었다. 내가 겪은 것까지 2번이나 되는 셈인데 업계에 환멸 아닌 환멸이 느껴지기도 했다.


N년차 기자를 아들로 둬 이제는 '미디어오늘'보다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가 이따금씩 이런 말을 하실 때가 있다.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면 아들이 근무하는 매체 뿐만 아니라 다른 매체들도 똑같은 기사에 동일한 배열로 판이 이뤄져있다고 말이다. 전재료를 위해 PV가 잘 나오는 기사들을 위주로 배치하려다 발생한 모습이었다. 기자들이 잔뜩 모여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는 "발제를 열심히 해 몇일 동안 취재한 기사는 절대 읽히지 않는다. 아예 포털 메인에 걸어주지도 않는다"는 씁쓸한 말들이 잇따라 오가기도 한다. 이같은 오늘날의 현실 속 서로 뭉쳐 으쌰으쌰 하기에도 모자른데 굳이 타사 기자에게 연락해 '내가 맞다'는 식의 꼽을 주면 무엇이 더 남겠냔 말이다.


후배의 한탄에 나와 입사 동기가 해줄 수 있었던 건 그냥 같이 '분개'로 포장된 공감 아니겠는가. 절대 지지 말고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맞서라를 가르쳐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똑같이 대응하면 제 얼굴에 침 뱉기 밖에 더 되겠는가.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 너무 재밌다는 후배에게 너무 잘하고 있다는 말 밖에 해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했다. 이에 어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쫄지마!'라는 문자를 쓱 보냈다. 그러자 후배는 기나긴 답장을 보내주었는데 밤이 깊어 잠이 들 때까지 계속 생각이 났다. 더 담대해지겠다는 그가 보내온 말은 이랬다. "선배의 후배로 있을 수 있어서 어찌나 감사한지 몰라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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