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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ug 20. 2022

하늘 같은 어머니의 은혜

이른바 '어른들 메뉴'라고 회피하던 것들이 이젠 먼저 찾는 최애가 됐다. Paul 제공

아버지가 이틀 동안 출장을 다녀오셨다. 원래 예정된 일정은 1박 2일이었는데 함께 간 동료가 하루만 더 일정을 보내고 가자고 해 그렇게 변경된 스케줄을 소화하셨다. 덕분에 어머니는 약간의 자유를 누리게 됐다. 물론 아버지가 과거 모습을 가진 가부장적인 면모를 지닌 건 아니다. 다만 자식들만 있는 저녁에 대한 부담은 없으니 무더웠던 날이 지나간 요즘 느껴보는 상쾌한 공기쯤을 어머니도 얻지 않으셨을까.


이틀간 어머니에게 줄곧 들었던 말은 '오늘은 뭘 먹으러 가볼까'였다. 앞서 언급했듯 아버지가 계신다고 하여 까탈스러운 저녁 준비가 이뤄지는 건 아니다. 온전히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가는 시간들이었는데 별안간 얻으신 자유를 좀 더 만끽하고 싶으신 마음에 이 기간 저녁들은 모두 외식이었다. 밖에서 먹는 음식이라고 하여 거한 메뉴가 선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집 근처에서 먹던 외식을 좀 더 먼 거리로 간 것 뿐인데 나도 기사를 자처해 따라다니며 잇따른 환기를 얻을 수 있었다.


동생이 대학원에 진학하며 부모님과 자식간 대화는 꽤 현실적인 것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가령 졸업 후 시험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 지금 다니는 직장에서 얼마나 근속할 것인지, 청약은 꼬박꼬박 넣고 있는지 등이었다. 집에서도 별스러울 것 없이 나누던 대화였는데 외식을 다니는 동안 운전대를 잡고 동생과 어머니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자니 시간이 벌써 이만큼 지났나 싶었다. 내후년이면 아버지가 은퇴를 한다고 하니 시간이 왜 두 손으로 잡을 수 없는지 실감하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잘 살고 있는 건가 적잖은 두려움이 몰려오기도 했다.


이 생각이 나를 더 감쌌던 이유는 어머니의 겉모습이었다. 어머니도 이제 수년이 지나면 은퇴를 해야 한다. 막연하게 늘 큰 존재였던 어머니가 쉰을 넘긴 나이로 이제 자식들보다 몸집은 꽤나 작아졌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가 큰 것이지만. 아직도 어린아이와 같아서 부모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서 여전히 내게는 큰 존재인데 이를 조금씩 접어가야만 하는 현실이 퍽 야속하게도 느껴졌다. 한참 밥을 먹다가 자식을 위해 맛있는 반찬에 손을 덜 두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포착한 뒤엔 더 마음이 아렸더란다.


어엿한 직장인으로 아들이 모든 저녁값을 계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고 어머니가 사주시는 밥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동안 이런 외식을 할 때 계산은 조용하게 내 차지였다. 좀 옛스러운 방법이지만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한 뒤 자리를 파하고 나갈 때 "이미 계산했어"라고 말하는 장면을 연출했었다. 헤아려보면 절대로 갚을 수 없는 이들의 은혜에 미약하게나마 당장 보답하는 길 가운데 하나였다. 이번 외식은 왠지 징징거릴만큼 매달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하루 빨리 어른이 되길 바랬는데 막상 너무 빠르게 흐르는 순간들이 야속해서 그랬나.


최근 끝난줄 알았던 장마가 다시 이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출근하지 않는 날이지만 빗줄기가 시끄러우면 어머니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난다. 그리고 안방 문을 열어 "데려다줄게"란 말을 건넨다. 무섭게 내리는 비가 아닌 때에는 "그냥 운동 삼아 걸어가면 돼"라며 걷지 않고 학교 앞까지 갈 수 있는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시곤 한다. 솔직한 마음으로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꺼내와 어머니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면 아침잠은 더 이상 내편이 아니다. 그럼에도 비가 오는 날엔 줄기차게 일찍 일어나 안방 문을 두드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도 의지할 수 있는 편안함을 느꼈으면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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