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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ug 18. 2022

생물 공부에 진심이던 그 친구

아직도 N드라이브엔 생물학과 당시 찍었던 사진들이 남아 있다. 어떻게 공부를 한 건지 아득하다. Paul 제공

서른을 앞두고 크게 관심이 가는 건 함께 꿈을 꿨던 친구들이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다. 사실 매일 연락하는 이가 아니면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아도 삶을 사는데 어려움은 없다. 나도 채 이루지 못한 많은 것이 있으니 여기에 집중해도 벅차기 때문이다. 이같은 감정이 밀려올 때 친구들이 떠오른다. 별다른 조건을 구체화하지 않고 그저 주어진 하루 가운데 적당한 시시콜콜함을 찾던 모습들을 덧붙여 말이다.


이 친구도 그랬다. 지금이야 한국에서 은근히 강요하는 '나이에 맞춰'가 통하지 않는 세상이지만 라떼만 하더라도 재수를 해 대학을 간다는 건 의대 따위를 바라는 상위권 학생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현역으로도 갈 수 있었던 대학을 재수해서 왔으니 한살 아래인 같은 학번 동기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다행히도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재수생들이 더러 있었고 이 친구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나는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온 뒤 곧장 어학연수를 떠났다. 어학연수에서 돌아온 다음엔 전과를 했으니 이 친구과 찐하게 함께한 시간은 1학년이 전부였다. 아무리 21살이라도 19살을 한 번 더 보낸 이제 갓 학생을 벗어난 것에 불과했으니 그리 특별한 무언가로 시간을 채우지 않았다. 출석체크만 하고 강의실 뒷문으로 나가 밥을 먹고 온다거나 또 수업을 제끼고 영화를 보고 온다는 등의 식이었다. 한번은 이 친구가 빨간색 과잠 밑에 동일한 색의 바지를 입은 적이 있었다. 나와 다른 동기들은 연신 사진을 찍으며 깔깔거리고 웃기도 했었다.


특별했던 건 이런 와중에도 이 친구는 공부를 참 열심히 했다는 점이다. 날이 너무 좋은 날 놀러가자고 다른 친구들과 꼬시러가도 잠자코 열람실에 앉아 책에 얼굴을 파묻던 생물에 진심을 가진 친구였다. 당연히 성적은 학년 중 최상위권이었다.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니 못해도 대학원으로 진학해 좋은 연구자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원하지 않는 학과에 와서 꿈이 뭔지 몰라 적잖은 고민을 쏟아냈던 나와 정반대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던 어학연수에서 돌아와 전과를 한 뒤 꿈을 위해 바삐 나아가다보니 사실상 남이 되어버린 생물학과 동기들과 점점 멀어져갔다. 당연히 이 친구와도 시간표가 겹치는 때가 없어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고 그렇게 한동안 잊고 살게 됐다. 이후 직장인이 되고 나서 대학 동기들로부터 연락이 올 때마다 이 친구 생각이 나곤 했다. 그러면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물론 몸을 더 움직여 회신을 받을 수 있었으나 그만큼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몇 주 전 차를 몰고 집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오다 문득 친구 생각이 났다. 곧바로 휴대전화를 열어 전화를 걸었는데 한차례 수신이 닿지 않았다. 이에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뭐하고 지내냐는 말에 친구는 "그냥 놀지"라고 쿨하게 답했다. 저녁 한 번 먹자고 하니 알겠다고 했고 회사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뒤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2주가 지나 드디어 친구를 마주하게 됐다.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으니 대학교 1학년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와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가는 건 똑같았다. 몇 년 전 연락했을 때 몸이 아파 취업준비를 했으나 최종 취업을 하지 못했다고 했었다. 이후 상황을 물으니 수술을 하고 회복해 취업을 했지만 최근 몸 상태가 온전하지 못하다는 걸 깨닫고 퇴사를 했단다. 그러면서 지금은 이렇게 놀고 먹는 게 너무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천진난만한 웃음기는 대학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밥을 다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한참 이야기를 더 했다. 보통 취재를 나가면 쓸 이야기가 없는 경우 이야기가 되도록 질문을 만들어 던지곤 한다. 그래야 기사를 쓸 수 있으니까. 당시 친구를 만날 때 시간을 곱씹어보면 아무리 기억을 복기해봐도 특별히 소개할 말이나 일화는 없었다. 그럼에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이 시간을 꼭 브런치에 써야지 마음 먹은 바 있다.


내 글솜씨가 아주 좋아 평범한 소재도 멋드러지게 꾸밀 수 있어서 이런 생각을 가진 게 아니었다. 다채로움을 전하겠다고 기자가 됐는데 이런 만남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 모습 중 하나 아닐까 싶었다. 아 그래도 중요한 발제가 될 만한 대화는 있었다. 일을 쉬는 동안 해외 주식으로 아이폰 13프로 256기가 열대 정도는 벌었다고 해 커피는 친구가 샀다. 한없이 가난한 기자 친구는 소소하게 구내식당을 사는 것으로 충분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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