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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Aug 04. 2022

성장을 도모하는 벗

하루를 잘 보냈다고 여겨지는 순간은 그리 특별하지는 않다. Paul 제공

모교에서 강연활동을 함께한 친구와 저녁을 먹었다. 셈을 해보니 약속을 잡아 만난 지가 지난해 이후 반년 뒤였다. 무얼 하느라 그리 바빴는지 베트남 음식을 우걱우걱 집어넣으며 삶에 펼쳐진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오갔다. 누군가 줄이라도 길게 늘어섰다면 일단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밥 먹기 바빴을 텐데 퇴근 시간이 겹친 저녁임에도 가게 안이 가득 찼을 뿐 대기 행렬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마음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는지도 모르겠다.


밥을 다 먹고 식당이 있던 거리가 지금처럼 유명세를 타기 전부터 자리를 지켰던 카페로 갔다. 내가 좋아하는 원두를 판매하는 카페였는데 여전히 그 원두로 커피를 내리는지 여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맛은 변하지 않은 것 같았다. 지난 주말 방문에는 만석이어서 앉아보지도 못했는데 이날은 조금 빨리 움직였던 터라 큰 소파에 앉아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신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온 약속이었는데 식사도, 커피도 모두 나름의 여유가 깃들어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산미가 넘쳐나는 드립 커피를 홀짝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가운데 별안간 책이 주제로 떠올랐다. 친구는 훗날 법인을 설립하고 싶어했는데 명목상이 아닌 진짜 사회공헌을 할 수 있는 재단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난 '팩트풀니스'를 추천해줬다. 수년 전 사회공헌 공부를 한창 하고 있을 때 이 팀에서 일하고 있는 모 기업 부장이 공부에 도움이 될거라며 알려준 책이었다. 다양한 이슈 중 한가지를 택하는 아픔을 실현하는 게 사회공헌인데 이와 관련한 여러 시각을 제시해줬고 실제로 많은 공부가 됐다. 친구 역시 책 이름을 메모하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꼭 읽어보겠노라 공언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현재 종사하고 있는 일을 갖고 어떤 가치를 실현할지에 대해 나눴다. 최근 직업군이 다양해지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 역시 천차만별인 세상이 됐다. 간단한 예시를 들자면 유튜버 같은 부류다. 이들이 한 노력은 둘째로 미뤄두고 어딘가 얽매이지 않고 즐기며 사는 모습은 적어도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분명 대학시절 동안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한 뒤 나아가 선택한 직업인데 '왜 난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지'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것이다. 이는 내 직업을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오늘날 세태 속 나 역시 동화되어 가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우리가 모교에서 강연활동을 하며 줄곧 강조했던 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소기의 목적을 실현해봐라'는 말이었다. 웃기지만 현실에 뛰어들면 이 말은 '철 없던 대학생이 내뱉을 수 있었던 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일단 출퇴근과 주어진 업무에 매몰돼 하루를 보내기 바쁜데 여유롭게 가치를 입에 오르내릴 자 누가 있단 말인가. 그러다보면 불평이 쌓여가기 마련인데 나도 모르게 시작된 비교는 내가 했던 판단과 선택을 부정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이 대목은 친구와 내가 큰 이견 없이 공감을 말했던 부분이었다.


이같은 시간을 보내며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를 새삼 느꼈다. 내가 번호판 앞자리 숫자가 2개인 차를 구입한지 이제 1년이 다 돼 가는데 요즘 앞자리 숫자 3개가 있는 차를 기웃거리고 있는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받은 복을 세어본다는 건 정말 쉽지 않구나 다시 한 번 곱씹게 됐다. 솔직하게 다른 사람의 삶이 부럽다고 해 곧바로 그들 뒤를 쫓고 싶은 것도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익숙해져 편안하니 감사를 까먹은 게 불평의 영역 중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늘 똑같은 결말이지만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이 큰 축복이다. 자칫 나만 옳다고 단언하는 실수를 이같은 대화를 통해 꽤 많이 상쇄시킬 수 있기에 그렇다. 무엇보다 자신이 나아갈 바를 깊이 고민하고 해야 할 일들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벗의 모습은 단단하게 묶었다 생각했던 다양한 이름들의 끈을 재차 점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것만으로 식사와 커피 값은 견주지 못하는 몇배의 수확을 얻었다 확신한다. 터져나오는 한숨을 막을 도리는 없으나 방전까지 되지 않도록 막아줄 방편으로 자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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