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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폴리 Mar 30. 2020

일주일에 하루쯤은
비생산적으로 살아도 괜찮아

직장인의 생산 활동과 비생산 활동의 관계

주말에 하루 종일 한심하게 집에서 딩굴대었던 나, 괜찮은 걸까?


어제는 토요일, 하루 종일 집에서 딩굴거렸다. 오전 10시쯤 떠들썩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동생 내외가 집에 쌍둥이 조카들을 맡기러 온 것이다. 큰 아빠를 찾는 소리에 부스스한 차림으로 나가 애들을 반겼다. 대강 씻고 나와 아이들과 놀아주기 시작했다. 이제 말을 조금씩 내뱉는 시기라 엄청 귀엽다. 여자 아이 서은이는 좀 수줍어서 말을 많이 하진 않는다. 남자아이 이수는 강한 호기심과 행동력으로 이것저것 다 손대며 '이거 뭐야', '큰 거 주세요' 등 다양한 말을 서툴게 뱉는다.


어머니가 아침밥으로 떡국을 해주셔서 방에 숨어서 급하게 먹고 애들과 다시 논다. 귀여운 조카들과 숨바꼭질, 그림 그리기, 비행기 태워주기 등 다양한 놀이를 하니 나도 졸리고 애들도 졸리다. 애들을 슬쩍 부모님께 다시 맡기고 내 방으로 돌아와 다시 잠을 청한다. 주말 낮잠이 이렇게 달콤하던가? 침대에 몸을 뉩히자 마자 스르륵 다시 잠에 든다. 


배고픔에 눈을 떴다. 갑자기 내 머릿속은 유니 짜장으로 가득 찼다. 갑자기 웬 유니 짜장? 이유인즉슨, 며칠 전에 본 예능 프로그램에 유니 짜장이 등장했는데 너무 맛있어 보여서 꼭 주말에 시켜먹어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그 예능 프로그램은 '놀라운 토요일, 도레미 마켓'이다. 요새 너무 빠져서 1화부터 정주행하고 있다. 잘 들리지 않는 노래 가사를 출연자들이 받아쓰는 예능인데, 문제를 맞히면 전국 방방곡곡 시장의 맛있는 음식들을 출연자들이 먹을 수 있다. 인천의 시장에 나온 메뉴가 바로 유니 짜장이었는데, 정말 보면서 군침이 질질 흘러나와 시켜먹을 수밖에 없었다.


배 빵빵하게 밥을 먹고 나니 애들이 깼다. 한 시간 정도 또 애들하고 놀아주다 보니 부모님이 애들 데리고 동생에게 갈 시간이 다 되었다. 나 혼자 집에 남으니까 또 왜 졸린 거지...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책상 앞에 앉았는데 끄적끄적 대다가 30분도 버티지 못했다. 그냥 한없이 게으르게 게으르고 싶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놀라운 토요일 재방송 보면서 낄낄 깔깔 웃고만 싶었다. 심지어 그마저도 눈이 감겨서 다시 침대에 몸을 뉘었다. 


다시 일어나 보니 저녁 7시 30분이네? 곧 놀라운 토요일 본방송을 할 시간이었다. 부모님도 집에 들어오셨다. 저녁 준비를 대강 하고는 거실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놀라운 토요일을 보면서 밥을 먹고 나니 어느새 9시가 다되어 간다. 근데 뭐했다고 머리가 어지럽다. 집에만 박혀있어서 바깥공기를 안 마셔서 그런가? 아니면 감기에 걸렸나? 타이레놀을 한 알 먹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약을 먹어서 그런지 괜히 또 졸리다. 이건 뭐 게으름뱅이도 이런 상 게으름뱅이가 없다. 진짜 집에서 한 발자국도 안 벗어났네. 아니, 딱 한 발자국 벗어났구나. 짜장면 배달받으러 나간 것과 다 먹은 그릇밖에 내놓으러 나간 것 그게 다였다.




나는 회사에서 주 5일 근무를 하는 사람이지만, 회사를 벗어난 개인의 삶도 생산적이기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생산적 활동을 끄적대고 있다. 글쓰기도 그 일환 중 하나이고. 그런 내가 어제는 정말 집에서 먹고, 자고, 싸고, 놀고, 딩굴대고 아무것도 안 한 것이다. 그냥 왠지 모르게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다. 종종 이런 내가 한심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또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그렇게 잘못하고 있는 걸까?'라는 의문도 든다. 평일에도 매일 이렇게 보내는 것은 아닌데, 주 5일 꼬박 같은 시간 회사로 출근하고 저녁이 돼서야 터덜 터덜 집에 오는 삶을 살고 있는데, 주말에 하루쯤은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한다고 해서 내가 틀린 삶을 살고 있는 걸까? 그건 분명 또 아니란 말이지.


평일에 열심히 생산활동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 주말이 허락되었고, 그 시간 동안 비생산적인 활동으로 쉬고 놀고먹으며, 다시금 생산활동을 하기 위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이, 온전히 나의 휴식을 위해 쓰는 그 시간이 꼭 필요한 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 생산량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재료와 연료가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 재료와 연료를 만드는 게 바로 비생산적 활동인 것이다.  운동을 하고 나면 근육도 성장하기 위해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있어야 더 생산적일 수 있다는 모순적인 현상에서 웃음을 짓는다. 내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불안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 쓰고 보니 어제의 내 게으름을 반성하다가... 괜히 괜찮다고 자위하는 그런 글 같기도 하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좀 그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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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회사에서 디지털 마케팅 및 캠페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요가와 글쓰기, 일상을 재미있게 만드는 소소한 기획, 문화 예술 등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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