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조 청소를 하며 알게된 진짜 더러움
얼마 전 부터 빨래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모든 빨래가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조금 두꺼운 면 티셔츠 몇개가 그랬다. 막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은 아닌데, 약간의 쉰내랄까? 향기나는 섬유 유연제를 많이 넣어도 그 약간의 쉰내는 없어지지 않았다. 찝찝했다. 왜 그런 것일까 깊게 고민을 하다가, 어머니가 추천해주신 방법으로 비닐 봉투에 옷을 담고 식초와 베이킹소다, 끓는 물을 넣고 반나절 동안 기다렸다. 빨래의 냄새가 없어져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일 뒤 다시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건조대에 널어놨는데, 냄새를 맡아보니 아주 미세하게 찝찝했던 냄새가 다시 나는 것이다. 왜 이럴까 곰곰히 생각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다.
어느날 업무 관련 미팅을 하다가 어떤 분을 만났다. 가전제품 이야기를 하다가 세탁기 이야기가 나왔다. 그 분은 세탁기에 대해 관심이 아주 많았다. 한 달에 한 번 청소를 해줘야 한다고 했다. 세탁기를 모두 분해해서 청소하면 베스트, 그게 힘들다면 세탁조 청소라도 자주 해줘야 한다고 설파했다. 본인도 세탁조를 청소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렇게 세탁조에 때가 많은 줄 몰랐다고 하셨다.
혼자 산지 1년 반이 넘었는데, 그 동안 나는 세탁기 청소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음 내 세탁기는 얼마나 더러웠을까? 세탁 할 때마다 통돌이 세탁조 안을 봤지만 더럽다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런데 인터넷을 검색해보고 세탁조 청소하는 사진들을 보니 '아... 지금 바로 가서 세탁조 청소를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며 급 엄청 찝찝해졌다. 그날 바로 집에 들어가면서 동네 마트에서 과탄산소다 및 세탁조 세정 크리너를 샀다. 인터넷에서 본 방법을 따라 뜨거운 물을 세탁조에 가득 받았다. 과탄산소다와 세탁조 세정 크리너를 가득 부었다. 그리고 세탁 모드로 돌리고 1~2시간 정도 기다렸다. (세탁조 청소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더러운 비주얼이 있으니, 비위가 안좋으신 분들은 아래 사진을 스킵해주세요)
이윽고 세탁기 문을 열었다. 아... 장난 아니다. 내가 여기서 어떻게 빨래를 했을까 싶었다. 더러운 때들이 세탁조 내부에서 불려져 나와 둥둥 떠다녔다. 탈수를 하는데도 깨끗하게 잘 없어지지 않아서, 거름망으로 몇 번을 거르고, 헹굼과 탈수를 반복했다.
이제야 조금 깨끗해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더러움과 함께 빨래를 했으니 그렇게 냄새가 날 수 있었겠네. 아, 진짜 청소 자주 해줘야 겠구나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지금까지는 세탁기를 돌리면서 세탁물에서 나오는 더러움만을 신경썼다. 하지만 근원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더러움이 또 다른 더러움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짜 더러움을 발견하는 것에서 깨끗함은 시작된다.
세탁기만 그런 것이 아니다. 많은 것이 그렇다.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에 신경을 덜 쓰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속에서 곪아있다면 겉이 깨끗해도 깨끗한 것이 아닌 것이다. 보이는 것은 쉽게 신경쓸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쉽게 간과하고 만다. 발견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보이는 것 이면의 것을. 세탁기 청소를 통해 깨달을 수 있듯이, 그 이면의 것도 신경을 써야 한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가는 것들이 나중에 되돌아 올 수 없는 함정을 파고 만다. 찝찝한 구석이 있다면 두드려보고 건너야 한다. 보이지 않는 묵은 때를 발견하고 벗겨내야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더러움이 진짜 더러움이다. 그 더러움을 잘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좋아요와 댓글, 공유는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