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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Nov 18. 2016

외할머니

아이고메..


 외할머니는 자신의 막내딸을 보고 몸을 일으키셨다. 침대 머리맡엔 외할머니의 이름과 연세가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94세. 엄마, 나, 동생과 차례로 손을 잡고 눈을 마주치시는 외할머니의 눈동자는 힘없는 눈꺼풀 밑에서 수줍게 반짝였다. 다섯 걸음 정도 떨어진 사람을 향해 말하듯 엄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컸다. 엄마의 손을 포개 잡은 외할머니의 손가락엔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 받은 반지가 있었다. 몇 년 전 외할머니는 요양원으로 거처를 옮기셨다. 몸이 점점 쇄약 해지시는 데 그만큼 돌봐드릴 손이 부족해서였던 것 같다. 요양원은 이모들이 사는 곳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가족들의 왕래가 잦은 편이었다. 하지만 우리 집과는 차로 2 시간 정도 되는 거리였기 때문에 부모님은 주말에나 종종 찾아가셨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나와 동생의 방문은 쉽지 않았었다. 


네 아들들이냐?

응, 엄마 내 아들들.

얘가 큰 애냐?

응, 애가 큰 애야.


 외할머니의 기억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엄마 없이 나와 동생만 왔다면 못 알아봤을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보이셨다. 그 웃음은 엄마의 미소를 만들어 낸 원석이었다. 주름지고 색이 바랜 입술은 그 꼬리를 올리며 따스한 공기를 내뱉었다. 외할머니의 눈은 엄마의 왼 팔을 감싸고 있는 보호대에 내려앉았다. 수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불편한 엄마의 왼 팔에 대해 물으셨다. 외할머니의 얼굴에 주름이 몇 개는 더 늘어난 것 같았다. 외할머니는 엄마의 아픔을 짐작하듯 잠시 침묵하셨다가 자신의 아픈 곳을 짚으셨다. 계속 이가 아프고, 수술한 곳이 아프다며 오른손을 허리춤으로 숨기셨다. 엄마는 외할머니의 아픔을 걱정하며 공감해 주었다. 그런 엄마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며 고개만 끄덕이시던 외할머니는 엄마의 왼 팔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으셨다. 엄마의 왼손과 외할머니의 왼손은 여전히 포개져 있었다.


 외할머니는 엄마에 대한 사소한 질문들을 하셨다. 사는 곳이 어딘지 물으셨고,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물으셨다. 가족이 아니더라도 쉽게 알 수 있을 만큼 아주 가벼운 정보들을 물으시는 외할머니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엄마는 그걸 하나하나 세심하게 대답해드렸다. 외할머니는 곱고 예쁜 모래를 움켜쥐려는 어린 소녀의 눈으로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들을 바라봤다. 어떻게든 그것들을 기억 속에, 마음속에 간직하려는 것 같았다. 짧은 문답들이 건축가의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여갔고 그 틈은 보드란 침묵으로 채워졌다. 사실 그것이 완전한 침묵은 아니었다. 짧은 문답의 틈마다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 소리는 아픔의 호소라기보단 숨소리에 가까웠다. 외할머니의 숨소리는 무한한 우주 속에서 유일하게 들리는 스톤 박사의 숨소리 같았다.


 같은 방에 계시던 할머니 두 분은 서울 밤하늘에 몇 개 안 되는 별을 보듯 우리를 하염없이 바라보셨다. 무의식 중에 시선을 돌리다가 눈이 마주쳐 화들짝 놀랐지만, 당황하시지 않게 정중히 목례를 드렸다. 이곳은 병원처럼 각자의 침대가 있었고, 머리맡엔 옷장 하나가 천장에 닿을 듯 서 있었다. 그 아랫부분은 선반으로 나뉘어 있어 잡동사니들이 놓여 있었다. 옷장 문마다 어느 아마추어 사진작가가 찍은 듯한 할머니들의 독사진이 전단지만 한 크기로 인화되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외할머니의 옷장엔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았다. 사진 없는 옷장은 앙상해 보이기까지 했다.

 급하게 외할머니의 사진을 찾았다. 선반에 놓인 물건들을 들쳐 보아도 사진은 없었다. 엄마가 외할머니에게 사진이 왜 없냐고 묻자 외할머니는 잘 모르겠다는 듯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침대 위에 붙어 있던 외할머니 이름표 뒤에 엉성하게 꽂혀 있는 사진을 동생이 먼저 발견했다. 사진은 추수를 앞둔 벼처럼 구겨지기 전까지 휘어져 새까만 뒷모습만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때문에 눈에 띄는 곳에 그것이 있었어도 사진인 줄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사진을 뽑아 든 엄마의 손엔 외할머니의 수줍은 미소가 있었다. 나는 곧장 데스크로 나가 사진을 붙일만한 도구를 구해 와 사진을 붙이기 시작했다.


왜 엄마 사진만 안 붙어 있는 거야? 엄마, 사진 이쁘게 잘 찍혔어.


 가위와 테이프로 사진을 단단하게 붙여 놓은 뒤, 우리는 그것을 깊이 감상하기 시작했다. 외할머니의 사진은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곱고 아름다웠다. 엄마의 찬사에 외할머니는 사진보다 더 어여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진을 붙이고 다시 자리에 앉은 엄마는 다시 외할머니와 손을 포개어 잡았다. 창밖엔 힘찬 바람이 눈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사실 우린 오늘 있을 가족 모임에 가는 길에 외할머니를 모셔가고자 요양원에 들른 것이다. 하지만 짓궂은 날씨는 이를 허락하지 않는 듯했다. 바람에 붙들려 거센 칼춤을 추는 눈송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살갗이 애리는 것 같았다.

 길어지는 침묵 속에 우리는 창밖의 춤사위를 보고 있었다. 걱정스럽게 엄마가 입을 열었다.


창가 자리 안 추워?

괜찮아. 이게 따뜻해.


 외할머니는 무릎까지 덮고 있는 분홍색 이불을 만지시며 대답하셨다. 극세사로 된 두툼한 이불은 포근한 난로 같아 보였다. 외삼촌이 외할머니와 둘이 살 때 선물로 사드린 이불이란 걸 이미 알고 있던 엄마는 그게 어버이날 선물이었는지 생신 선물이었는지 분명히 하고 싶어 기억을 더듬었지만, 외할머니도 엄마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손끝으로 이불을 뒤적거릴 뿐이었다. 외할머니는 이불 자랑을 하시고 잠시 아무 말 없이 자기 발 끝을 보시다가, 부족하다 느끼셨는지 영수가 사준 거라고 다시 강조하며 말씀하셨다. 창문도 제법 두꺼워보였고 외풍이 들어오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엄마는 더 걱정되지 않는다는 듯 외할머니를 따뜻하게 지켜주는 기특한 이불을 쓰다듬었다. 외할머니는 그런 엄마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시다가, 창가 자리는 답답하지 않아서 좋고 문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복잡하지가 않아 좋다며 부동산 아줌마처럼 말씀하셨다. 그렇구나. 엄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멀끔하게 차려입은 막내 동생을 보며 외할머니는 화제를 돌리셨다. 


얘는 학교 다니냐?

응, 대학생이지. 졸업하려면 아직 멀었어.

얘는 졸업했어?

큰 얘도 아직 다니지.

아아. 한 명 더 있지 않나? 딸. 걔가 누난가?

아니. 걔가 가운데야. 걔도 아직 졸업 안 했어.

짱장하고만.


 대학생만 셋. 우리를 번갈아 보시던 할머니는 엄마와 마주친 눈을 돌리며 농담하시듯 말씀하셨다. 그렇지? 엄마 딸 이렇게 살고 있어. 엄마는 씩씩하게 대답하고 외할머니를 따라 웃으셨다. 나는 고개를 돌려 막내를 잠깐 쳐다보고 다시 외할머니께로 얼굴을 향했다. 몇 마디 못 나눈 것 같은데 시침은 제법 기울어 있었다. 눈보라는 좀처럼 지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얄미운 날씨를 흘겨봤다. 아무래도 외출은 힘들겠지? 응 이런 날씨는. 엄마는 다시 시계를 확인하고 그런 엄마를 외할머니는 말없이 지켜보셨다. 시계를 보던 오른손을 뻗어 두 손을 움켜쥔 엄마는 외할머니와 얼굴을 마주했다. 이제 갈게. 엄마는 쉽게 일어나질 못했다. 동생과 나는 겉옷을 챙겨 몇 걸음 물러서서 두 사람을 바라봤다. 엄마는 막내의 도움을 받으며 겉옷에 왼 팔을 집어넣었다. 옷을 다 입고 엄마는 다시 외할머니를 보며 말했다. 엄마, 이제 갈게.


가니?.. 서운하다.


 엄마는 대꾸하지 않았다. 우리도 허리 숙여 인사를 드린 뒤 나왔다. 직원 분들에게도 목례를 하고 나와 엘리베이터에 타기까지 우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운하다. 난 그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들은 영어 단어처럼 그 말의 의미가 뭔지 알고 싶었다. 외할머니 연세가 많으시네. 응. 그래도 연세에 비해서 건강하신 것 같아. 굳이 말할 이유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우린 다시 차에 올랐다. 조만간 또 외할머니를 뵈러 오고 싶었다. 너무 늦게 찾아왔다는 느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엄마는 조수석에 앉아 눈보라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엄마도 외할머니의 마지막 말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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