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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Apr 12. 2017

합격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친절하게 가르쳐줬던 형이 있는데, 일을 마치고 직원들과 함께 늦은 점심을 먹을 때서야 그 형이 사장님의 아들인 걸 알게 됐다. 은범이 형은 이제 막 장교로 군대를 나온 뒤, 취업 준비를 하면서 부모님의 일을 잠시 도와주고 있었다. 내가 그 일손을 채웠기 때문에 그 날 이후로 그 형을 식당에서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한다는 형의 진로는 항공 분야였다. 오랫동안 꿈을 갖고 열심히 준비해 온 은범이 형의 성실함은 단 하루, 부모님의 일을 돕는 모습을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가게에서 일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장님 내외분은 물론 함께 일하는 모든 분이 친절하고 성실하셨다. 일도 어렵지 않았고 개인적인 상황과 시간을 충분히 배려해주셨다. 그렇게 반년 가까이 일하면서 정이 드는 건 당연했다.

쓰러질 듯 더웠던 여름이 지나 어느덧 하반기 취업이 분주하게 이뤄지는 시기가 되었다. 이 시기마다 긴장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았다. 그리고 사장님에게서도 그와 같은 긴장감이 느껴졌다.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이따금 보이는 무거운 표정이 하루하루를 숨죽이며 보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한 번 만나 봤을 뿐이지만, 난 은범이 형이 취업할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환절기라 그런지 날씨가 유난스레 변덕을 부리면서 식당의 매출도 함께 심술을 부렸다. 예상치 못하게 바쁘다가 한가하기를 반복하며 수 주가 흘렀다. 이런 변덕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정신없이 바빴던 어느 날에도 능숙하게 늦은 점심상을 준비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와 사장님이 먼저 자리에 앉았을 때 사장님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전화를 출처를 잠시 확인하는가 싶더니 황급히 핸드폰을 들어 통화 버튼을 누르셨다.


응, 그래 은범아. 지금 밥 먹으려고.

글쎄..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야지.

응응.

아... 그래. 그래.

…..

그래. 울지 말고. 그래.

고생 많았다. 정말 고생 많았어. 울지 말고.. 잘했다.


 지원했던 모든 회사가 떨어지고 마지막 남은 회사의 최종 발표. 수만 명이 지원했고 단 3명만 뽑는 경쟁 속에서 은범이 형은 합격했다. 전화를 받던 사장님의 눈시울이 붉어지셨고 목이 메 제대로 말씀하지도 못하셨다.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신 사모님도 주방에서 뛰쳐나와 통화 내용을 듣다가 합격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훔치셨다. 식당 안 모두가 같은 마음이라는 듯 똑같은 표정으로 통화하는 사장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은범이 형이 해낼 거라 믿었던 나 역시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고생, 기쁨, 행복, 환희, 안도, 가족, 사랑. 그 외 떠오르는 모든 감정의 명사들을 합쳐도 설명되지 않을 어떤 느낌이 그 순간을 뒤덮어버렸다. 통화가 끝나자 우리는 모두 박수를 치며 축하를 전했다. 식사를 하면서 사장님은 그간 은범이 형의 고생을 옆에서 지켜봐 왔던 이야기를 하셨다. 쌓였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풀린 듯 사장님은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하셨고 빛나는 눈동자는 어딘가를 향해 있었다.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고생을 함께했기에 오늘의 기쁨을 함께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쁨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게 가족이라면, 고생도 함께할 수 있는 게 가족일 것이다. 기쁨을 함께할 수 있는 게 벗이라면, 고생도 함께할 수 있는 게 벗일 것이다. 함께 울 수 있고 함께 웃을 수 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은범이 형네 가족뿐 아니라 그 자그만 식당에서 함께 땀 흘리며 일했던 우리 모두가 그 긴장과 기쁨에 함께했다. 그 날의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나는 그 시절을 사랑 속에 지나왔음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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