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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Jun 22. 2020

200622

실로 모든 것이 은혜다. 마틴 루터는 “새가 매일 먹이를 찾는 수고를 하지만, 그 새에게 먹이를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지 그 새의 수고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땀 흘려 돈을 번다.”란 말은 엄연한 의미에서 비진리다. 땀 흘려도 돈을 벌 수 없다. 죽도록 고생해서 얻는 것은 죽음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애씀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다. 그래서 우리는 먹고 마시고 입고 편히 쉴 곳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감사란 옹졸하기 그지없다. 방금 이 글을 적고 눈앞에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기도와 감사하는 마음 전혀 없이 절반이나 마셔버린 내 죄악을 회개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한 것은, 내가 커피 사줘서 고맙다고 주님께 말하지 않았어도, 그런 주님을 의식조차 하지 않았어도 고된 하루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만족을 느끼는 나를 보고 기뻐하셨다는 것이다. “네가 좋으면 됐다.” 뒤늦게 회개한 나에게 주님은 빙그레 웃으며 말씀하신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진한 감동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제야 깨달아지는 것들, 에어컨 바람과 카페까지 걸어온 온전한 육신과 커피를 소화하는 건강과 내가 앉을 수 있도록 비어있던 자리와 커피를 마시며 일과를 마무리하도록 주신 맥북과 귀에 들려오는 찬양과 그걸 들을 수 있는 이어폰과.. 끝도 없이 나열되는 은혜가 나를 둘러싸고 꽉 끌어안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에 다시 주님을 바라봤다. 여전히 따뜻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 이럴 땐 그냥 내가 덜 미안하게 으스대 주시면 안 돼요?


 지난 토요일, 주님은 별안간 내게 사랑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갑작스러운 고백에 놀라고 감동해서 지하철에서 엉엉 울어버렸다. 나도 주님 사랑한다고, 주님밖에 없다고, 욥처럼 고난당해도 이 사랑 하나면 괜찮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 나는 주님께 화를 냈다. 이렇게나 나를 사랑해 주시는데, 왜 나는 그렇게 화를 냈던 걸까? 이렇게나 자상하신 내 남자에게 못됐다고 말했던 걸까. 주님은 왜 그때 아무 말씀도 안 하셨을까? 울며불며 떼쓰고 억지 부리고 심한 말 했던 내게, 주님은 자기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말없이 보여주고 또 보여주셨다.

 주님은 억울한 사람이다. 베풀어주시는 만큼 받지도 못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오로지 주기만 하시는 분인데도 감사보다 더 달라는 요구를 더 많이 들으시는 분이시다. “주님, 감사해요! 이것을 주셨으니 이젠 저것도 주세요!” 나의 감사도 감사로 끝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남자는 나로 인해 행복해한다. 자신을 버리고 조롱하고 죽이는 자들을 위해 “다 이루었다. 이제 내가 사랑하는 저 사람들을 내 아버지의 집에 데려갈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미소를 지으신다.


 토요일처럼 내가 못되게 굴 때는 주님도 서운해하셨으면 좋겠다.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해?”라고 맞서 주셨으면 좋겠다. 그러나 하나님의 연애 스타일은 다르다. 그러니 늘 속 좁은 나만 댕댕거리다가 제풀에 지쳐 주님 품에 폭 안기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 품 속에 뛰는 심장 소리에서 하나님의 미안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맨날 주님한테 진다. 다시 울며 회개하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못된 애인이지만 계속 사랑해달라고 염치없이 구한다. 그러면 주님은 늘 내 이마에 입 맞추시며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그만 울라고, 다시 일어나 함께 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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