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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Dec 09. 2020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요 12:37-42

 정답은 주어졌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되었다. 온 인류가 철학과 사유로-그리고 과학으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은, 과거에 언어로 제시되었다가 이제는 실체적 존재로 우리 가운데 나타났다(요 1:14). 말씀이신 예수께서 역사 속에 행하신 일들은 놀라운 것이었다. 전에도 후에도 그와 같은 역사를 일으킨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와 함께 호흡하며 그 모든 일들을 경험한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요 7:31).

 그러나,


 "예수께서 그렇게 많은 표징을 그들 앞에 행하셨으나, 그들은 예수를 믿지 아니하였다.(요 12:37)"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를 통해 강력한 대조를 드러낸다. 바로 예수께서 진리이신 로고스 그 자체이신 것과 인간들의 무지의 대조다. 이 대조는 예수께서 영광 받으시는 십자가 사역을 기록한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더욱 선명하고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이미 요한복음 7~8장에서 살펴본 이 대조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처참하고 끔찍했다. 그리고 12장 37절에서 요한은 그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이 절제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죄에 대한 단호함 그리고 무지한 자들을 향한 불타는 긍휼이 담겨있는 듯하다.


"그리하여 예언자 이사야가 한 말이 이루어졌다. "주님,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으며, 주님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그들이 믿을 수 없었던 까닭을, 이사야가 또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무디게 하셨다. 그것은 그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게 하고, 마음으로 깨달아서 돌아서지 못하게 하여, 나에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가 예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그가 예수를 가리켜서 한 것이다.(요 12:38-41)"


38절은 이사야 6장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 이때에 이사야는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영광을 보았다. 그때 이사야의 반응은 어땠는가?


"그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이사야의 반응은 계시록의 사도 요한의 반응과 같다(계 1:17). 그리고 다니엘의 반응과 같았다(단 10:9,15,17).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반응도 그랬다(눅 5:8). 예수의 영광을 본 택자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그의 영광 앞에 자신의 죄가 숨김없이 드러나는 경험을 하고, 그 죄의 결과로 자신이 사망한 것을 스스로 시인한다. 그 자리에서 이사야도 요한도 다니엘도 죽었다. 베드로 역시 자신을 부인함으로 예수님 앞에 스스로 사망선고를 한 것이다. 그때에 거기에 은혜가 임한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눅 5:10)"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내가 떨었더니 그가 내 무릎과 손바닥이 땅에 닿게 일으키고 내게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깨닫고 일어서라 내가 네게 보내심을 받았느니라 하더라(단 10:10-11)"

"또 사람의 모양 같은 것 하나가 나를 만지며 나를 강건하게 하여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단 10:18-19)"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계 1:17)"


 그러나 예수의 영광 앞에 죄인들의 심령은 돌처럼 굳어진다. 택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때가 아니라면 예수의 영광 앞에 마음이 굳어진다. 요한이 38-41절에서 말하는 신학이 이것이다. 예수의 영광 앞에 죽지 않는 영혼은 진리를 자기 의의 재료로 소비하고 구원에 자신의 자유의지를 공로화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부정하는 것이며, 예수께서 유일하고 영원한 그리스도이심을 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악의 죄인 것이다. 그러므로 긍휼의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과 귀를 닫고 마음에 이 씨앗이 뿌리내릴 수 없도록 단단하게 하시는 것이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한다.(마 12:31)


 우리에게 예수가 오셨다. 우리에게 예수님은 영광으로 자신을 나타내셨다. 우리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절규하고 절망하고 "나를 떠나소서!"라고 외쳤는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며 환영했는가?(막 11:9)

 예수 앞에서의 자기 부정과 사망선고 없는 신앙은 거짓이다. 그 구원이 진짜인지 의심해 봐야 한다.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을 환영했던 무리들은 얼마 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렇게 행함으로 자기 의를 증명하려 했던 것이다. 오늘날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믿음이 사망 선고 뒤에 온 은혜에 의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기대가 좌절되었을 때 그 열심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열심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다(히 6:6).

 

"지도자 가운데서도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이 생겼으나, 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 때문에, 믿는다는 사실을 드러내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이 회당에서 쫓겨날까봐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다.(요 12:42-43)"


 이 본문을 묵상하는 동안 내 심령을 사로잡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죄악에서 도무지 벗어나지 못하는 영혼을 향한 애통이었다. 사도 요한의 고발이 얼마나.. 암담한가. 그야말로 어둠이다(요 1:5). 믿지 못한 자들의 처참함을 고발하면서 믿는 자들이 행하는 역겨움을 고발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은 진수성찬보다 배설물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은 아름다움보다 추악함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은 위대함 보다 초라함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은 생명보다 죽음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은 성전보다 폐허를 더 사랑하였다. 그들은 건강보다 질병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은..


 그들은 자신의 안정, 자신이 가진 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했다. 예수님에게 위풍당당하게 찾아온 청년이 근심하며 돌아간 것처럼 말이다(마 19:22).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말씀을 묵상하고 은혜를 받고 예수님으로 인해 기뻐한다. 그리고 나아간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가? 이 직장, 이 관계, 이 돈, 이 기회를 놓칠까봐, 손해를 볼까봐 두려워하지는 않는가? 그 두려움은, 하나님의 영광 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다.


 아, 나는 죄인이다. 여전한 죄인이다. 아직도 내 입술은 부정하며 예수의 영광 앞에 망할 존재다. 주님께 나아갈 면목이 없다. 본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 말씀을 하신 뒤에, 예수께서는 그들을 떠나서 몸을 숨기셨다." 

이 말씀이 너무 아파.. 눈물로 기도했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돌리지 마옵소서. 하나님이여 저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제가 구원을 얻게 하소서.

 주를 향한 나의 열심은 십자가로 향하는 열심이어야 한다. 본 회퍼는 예수님의 부르심은 "와서 죽으라"는 부르심이라고 설명했다. 오늘 나를 보내신 일터가 나의 골고다다. 만나게 하신 그 사람이 내가 매달려 숨질 십자가다. 하라고 하신 그 일이 내가 맞을 채찍과 침이다. 그것이 예수께서 말하신 "나를 섬기는 방법"이다. 아멘, 내 사랑하는 나의 예수님. 당신의 영광이 내게 가장 귀한 것입니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요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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