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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Sep 07. 2016

은하빌라 이야기

 집 앞 ‘샘터어린이집’에 다녔을 때 일이다. 당시 살던 집은 ‘은하빌라’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팥죽색 벽돌로 지어진 3층 정도 되는 작은 빌라였다. 반지하였던 그 집은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우리 집이었다. 그래서인지 꾀 어린 나인데도 불구하고 그 집의 추억들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또렷한 건, 그 집에 살면서 가장 슬펐던 순간이다.


 무슨 변덕인지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떼를 썼던 어느 날 아침. 울며불며 발버둥 치는 나를 붙잡아 옷을 입히고 가방을 메우려 씨름하는 엄마. 그 모습을 지켜보시던 아빠는 하던 출근 준비를 멈추고 날 크게 야단을 치셨다. 쫓겨나듯 집을 나와 어린이집으로 향했지만, 어릴 때부터 꾀나 고집스러웠던 난 끝내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다. 어린이집이 집에서 1 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보니 항상 혼자 걸어 다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린이집 옆에는 큰 식당이 있었다. 두 건물 사이에 철문이 세워져 있었고 걸음을 멈춘 난 그 철문 앞에 이르렀다. 지면이 움푹 파여 있어서 그 밑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은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들을 버리는 곳이었다. 커다란 드럼통과 쓰레기봉투들이 창고로 보이는 컨테이너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난 창고를 마주 보며 쪼그리고 앉았다. 약간 잿빛이 도는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속으로 누군가 날 찾으러 와주길 바랐다. 내가 어린이집에 안 간 사실을 선생님이나 엄마가 알아채고 나를 찾길 바랐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철문 너머로 내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들려오길 바랐다. 그래서 날 꽉 끌어안고 내게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 날 혼내셨던 아빠 생각이 났다. 


아빠는 내가 싫은가 보다. 아빠는 엄마를 많이 좋아하는데, 엄마를 힘들게 하는 날 미워하는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아빠는 내게 더 화가 나실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자 아무도 날 찾지 않기를 바랐다. 그냥 여기 앉아 있다가 어린이집이 끝날 즈음에 집에 가면 되지 않을까? 그때 머리 위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어린이집에서 나오는 노랫소리였다. 내가 없는데 노래를 시작하네? 내가 없단 걸 모르시나? 내가 있어도 없어도 상관이 없는 건가? 갑자기 설움이 복받쳐 올라왔다.


 울컥함이 내 고개를 떨궜을 때 식당 뒷문이 열렸다. 담배를 물고 나오던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아저씨는 너무 놀라 억! 하고 소리를 지르다가 담배를 떨어트렸고 나 역시 너무 놀라서 웅크리고 있던 두 다리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고 곧장 철문 밑으로 뛰어들었다. 철문 밑을 기어 밖으로 나와선 뒤도 안 돌아 보고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아저씨가 좇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숨을 헐떡이며 오르막길 위에서 식당과 어린이집 그리고 은하빌라를 내려다봤다. 소스라치게 놀란 긴장이 풀린 탓인지 후회가 밀려왔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주일학교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가 부모님 말씀을 안 듣고 어린이집도 안 가서 이렇게 벌을 받는구나. 


 하지만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다. 이제 와서 집에 들어가도, 어린이집에 들어가도 혼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우물쭈물 서 있던 그 순간, 아빠의 승합차가 집에서부터 나와 내 앞을 털털거리며 지나갔다. 점점 멀어지는 찌그러진 트렁크 문을 보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내가 아빠를 화나게 해서 아빠가 날 버렸다. 아빠가 내가 미워져서 날 떠났다.


 종말적인 두 문장이 머릿속에서부터 끊임없이 흘러내려 내 시야를 가렸다. 난 목청껏 아빠를 부르며 승합차를 좇아갔다. 그 처절하고 서러운 질주는 흐르는 콧물을 훔치듯 금세 끝나 버렸다. 아이의 달리기로 자동차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아빠는 떠나갔다. 더 이상 아빠는 없다. 치밀어 오르는 생각들을 입으로 뱉어냈는지, 한 아주머니는 우는 날 달래주시며 아빠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끊어진 기억은 어린이집에 돌아가서도 울음을 그치지 못한 내 모습으로 이어진 후 다시 끊어졌다.


 아빠는 다시 돌아왔다. 아빠는 그저 출근을 했을 뿐이었고, 난 아빠의 출근하는 모습을 그 날 처음 본 것이었다. 그 후로도 몇 년을 더 은하빌라에서 살았다. 은하빌라에 살면서 '친구'란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고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됐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날 버리지 않을 거란 것도, 그분들이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인 것처럼 나 역시 그분들에게 그런 존재라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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