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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Sep 11. 2016

괜찮아

울지 마


 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왜 우느냐고, 울지 말라고 말하며 당황하는 내 모습에 넌 또르르, 또 한 방울 흘려보냈다. 내가 말실수를 했던가? 미안하다고 연신 말하면서 머릿속은 분주해졌다. 평소와 다름없던 대화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대여섯 방울의 눈물을 더 떨구고 나서야 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아니야.. 너 때문 아니야

그러면 왜 우는 건데?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괜히 웃으면서 농담을 던져봤다.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재미있을 법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뱉어댔다. 그렇게 허둥대는 날 향해 고정된 네 눈알은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을 쏟아냈다. 더치커피를 내리는 유리병처럼 정성스럽게도 또옥 또옥 떨어져 내렸다. 난 왼손을 소중하게 모아 떨어지는 눈물들을 피에로처럼 받았다. 손가락 하나 하나로 눈물을 닦아내던 오른손은 온통 젖어버렸다. 내 허벅지에 쓱쓱 문대 닦고는, 떨어지려 하는 다음 눈물을 훔쳐냈다.

 넌 그냥 우울하다고 했다. 최근 기막힌 일들을 안팎으로 겪은 너였다. 난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 말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많이 힘들겠다, 많이 상처받았겠다, 생각했었다. 그러나 난 지레짐작했을 뿐이었다. 정작 너의 마음은 자신조차 원인 모를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쥐어짜듯 눈꺼풀에 모여 겨우겨우 고개를 빼꼼히 내밀다가 떨어지는 눈물은 산고의 결과물처럼 처절하고 애잔해 보였다.


나 아까 지하철에서도 울었어. 왜 울었는지 알아?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엄청 큰 팩으로 마시면 좋겠다란 생각을 했는데 눈물이 났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네 말을 듣는 순간, 울지 말라는 말이 어찌나 의미 없게 느껴졌던지 방금 전까지 그 말을 내뱉었던 입안이 텁텁해서 양치를 하고 싶을 정도였다. 가만히 네 얼굴을 바라봤다. 뽀얀 화장 사이로 선명히 드러난 자국, 벌겋게 갈라진 흰자위, 꾹 다문 턱과 떨리는 입 근육, 두 뺨을 타고 흘러내린 눈물은 턱 밑에서 만나 고드름처럼 맺혀있다가 뚝 하고 떨어지길 반복했다.


 너는 감성이 풍부한 아이였다. 대부분 사소하게 여기는 것들이 너에겐 의미 있는 경우가 많았고 작은 것에 울고 웃을 줄 아는 아이였다. 너는 섬세한 사람이다. 자신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살폈고 그에게 맞추어 자신을 바꾸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또한 너는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다. 맡겨진 일은 끝까지 끌고 가려고 사력을 다했던 너다. 결국 모두가 떠나고 홀로 탈진해 쓰러져 있는 널 보고 되려 내가 억울해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넌 일언반구 없이 다시 일어나 그 일을 맡았다. 넌 그런 사람이었다. 묵묵하고 우직하게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 같던.

 그랬던 네가 날 만났다. 자기감정에 솔직한 사람, 할 말은 꼭 해야만 하는 사람, 늘 직설적으로 말하며 시시비비를 가리는 날 만나고 넌 참 많이 변했다. 어리광도 부리고 투정도 부리기 시작했다. 짜증도 내고 억울한 일에 속상해하며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어디서 마음껏 울지도 못했던 너는, 지금 내 앞에서 장마 같은 눈물을 쏟고 있다. 상처받지 않으려 세운 네 마음속의 벽은 언젠가부터 댐이 되어 있었나? 여러 가지 일들로 메말라 갈라진 네 영혼을 적셔주려고 계속해서 눈물을 방류해주는 것만 같았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의 눈만 응시한 채 째깍째깍 초침은 떨어졌다.


참지 마. 울어도 괜찮아. 울 수 있을 때 울어야지.


나지막이 말했다. 너의 두 손을 더욱 꽉 쥐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선 마음껏 울어도 괜찮아.

펑펑 울고, 울고 싶은 만큼 다 울 때까지 있어줄게.


너도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여전히 너는 별똥별 같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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