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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루 Mar 22. 2023

#25. 영화롭게 하소서

요 17:1-26

[1절]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 자기를 버릴 것을 말씀하시면서(16:32) 동시에 승리를 선포하셨습니다(16:33). “이 말씀을 하시고” 기도하십니다. “아들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요,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은 그 순종으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십자가 고난이었습니다. 영원히 하나이신 아버지에게까지 버림받으시는 것. 그 일에 우리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어느 누구도, 제자들도, 천사들도, 아버지도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창세 전부터 영원까지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고독을 예수님은 짊어지셨습니다.

 기도를 시작하시면서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기도하셨습니다. 이게 첫 문장이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보신 예수님.. 이 첫 문장을 읽을 때마다 제 가슴은 먹먹합니다. 몇 년이 지나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짊어지신 십자가가 무엇인지, 그렇게 얻으신 영광이 얼마나 위대한지.. 아, 이 미련하고 우매한 종은 아직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예수님의 기도 앞에 입을 가리고 티끌과 재 사이에 엎드릴 뿐입니다.


[2절]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권세는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였습니다. 그 큰 권세로 행하신 일은 저에게 영생을 주신 것입니다. 제가 받은 구원은 이만큼 크고 놀라운 일입니다. 저를 구원한 권세는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 만왕의 왕의 권세입니다!

 저는 오늘도 그 권세로 부여하신 생명을 살아갑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게 하소서. 기뻐하고 감사하지 않을 이유가 도무지 없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도 육신을 빼앗겨도 이 생명은 결코 빼앗기지 않습니다. 누구도 만왕의 왕의 권세를 능가할 수 없고 찬탈할 수 없습니다.


[3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제게 주신 영생은 ‘아는 것’입니다. 영생은 ‘아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참 하나님을 알길 원합니다. 죄악으로 부패한 제 지성과 상상과 경험으로 형성한 거짓 하나님, 금송아지가 아니라 참 하나님만을 더욱 알아가게 하소서. 십여 년 전 ‘신앙과 정서’를 읽고 참 하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 금요 철야 예배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 예배당의 의자와 바닥의 감촉과 공간의 냄새 그리고 제게 주신 응답까지 모든 것이 생생합니다.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이처럼 선명하고 생명력 있는 일입니다.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가 보내신 자 에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주님을 더욱 알길 원합니다. 성령님, 날마다 나를 가르치소서. 그리스도를 깨달으며 영생을 누리게 하소서. 이 ‘앎’이 제가 받은 ‘권세’인 줄 믿습니다. 


[4절]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께서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는 것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내게 주신 일을 이루는 것, 순종. 그것이 이 죄인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길입니다.

 제게 맡기신 일들이 있습니다. 제게 맡기신 말씀이 있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에 순종함으로 이 세상에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내가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였사오니”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8절]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며 그들은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저도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말씀들을 전했습니다. 더러는 이 말씀을 받지 않았으나 아버지께 속한 사람들, 제게 보내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예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도 예수님은 나를 통해 말씀들을 전하는 일을 계속하십니다. 이 말씀을 받은 사람들이 나의 증인들입니다. 그들은 제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들이 나의 증인입니다.

 나의 중보자 되신 주님, 당신은 이 작은 삶을 위하여, 제가 심판대 앞에 설 그 순간을 위하여 나의 증인들을 모으시고 세우십니다. 나를 향한 이 열심과 이 사랑이 오늘도 나를 살게 합니다.


[9-10절]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주신 자들입니다. 그리고 내게 주신 자들, 맡기신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합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고 섬기길 원합니다. 그들을 위해 더욱 간구하고 기도하겠습니다. “그들을 보전하사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제가 그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말씀들을 전하게 하시는 사람들은 나의 증인들, 나의 영광들입니다. 이 십자가가 내게 얼마나 존귀한지요. 그들을 위하여 제가 전제와 같이 부어지기를 원하나이다.


[12절]   

“내가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었나이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고 다만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그들을 보전하고 지키는 일은 제 능력에 있지 않고 아버지의 이름에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을 위해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께 온전히 다 맡겨야만 합니다. 그 중의 하나도 멸망하지 않음을 믿음으로 조급해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주님, 제게 장성한 믿음과 성숙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이 사역 가운데 대적하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있었으니 제자인 우리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놀라지 않겠습니다.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배신했다고 낙심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가운데 가룟 유다를 발견할 때마다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라’는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끝까지 사랑하시며 그 영혼을 안타깝게 여기신 것처럼 저도 대적하는 자를 향하여 미움 대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11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는 사역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 됨은 삼위일체를 본받고 그 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역으로 나를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은혜가 넘칩니다. 영광이 나를 덮습니다.

 성도의 하나 됨은 얼마나 큰 일입니까! 그러나 시대의 철학에 오염된 오늘날의 성도들은 개인의 경건을 공동체 신앙보다 더 큰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개인주의가 교회를 어지럽히고 진리를 대적합니다. 주여.. 우리가 하나 되게 하소서. 다시 교회가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교회의 권능은 하나 됨에 있음을 믿습니다. 언제나 교회가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함으로 하나 될 때 성령의 부흥이 일어났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실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가운데 거룩히 여김을 받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13,14절]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

 예수님의 말씀들은 내게 기쁨을 줍니다. 예수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해 줍니다. 내 기쁨은 주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받았기에 세상은 나를 미워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미움을 받는 가운데 더욱 기뻐할 수 있습니다! 이 기쁨은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세상에 영향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수요 예배 말씀처럼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내려서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미 제게 이런 은사를 주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을 이미 제게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충만한 기쁨을 저는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아멘, 아멘.


[21절]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교회의 하나 됨을 통해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 산 위의 동네, 켜서 비추이는 등불의 역할입니다. 우리의 하나 됨은 세상 가운데 놀라운 일로 드러날 줄 믿습니다. 그러니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인 줄을 알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리기를 그치게 하소서.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기를 그치게 하소서. 형제의 눈에서 티끌을 빼려 하기 이전에 각자의 눈에 들보를 빼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서로 사랑하게 하소서. 교회가 서로를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의 하나 됨은 삼위일체 안에 있습니다. 하나 됨, 서로 사랑함, 원수를 사랑함, 용서와 화해는 이처럼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알량한 자존심과 옹졸한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이 존귀하고 고결한 일을 외면해 버립니다. 가슴을 치며 통곡할 일입니다! 절망적으로 우매하고 치명적인 손해를 보는 일입니다.

 주여, 교회에 지혜를 주시옵소서. 제발 우리가 뭐가 진짜 귀한 것인지, 무엇이 우리를 사로잡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저울질해보게 하소서. 깨닫게 하소서!


[22절]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 됨 안에 영광이 있습니다. 개인의 경건 생활로는 절대로 조금도 맛보지 못할 영광이 여기에 있습니다! 형제를 용서하는 일에, 형제를 참아주는 일에, 원수를 환대하는 일에, 지극히 작은 자까지 섬기는 일에 있습니다. 영광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시는데.. 게으르고 무식한 우리는 오만방자하게 뭐 맡겨 놓은 것처럼 영광을 달라 하고 있습니다. 주여, 우리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의 죄가 큽니다. 교회의 큰 죄악이 주님 앞에 있습니다. 주여.. 십자가를 의지하오니 우리에게 용서를, 구원을 베푸소서.

 이제 교회가 일어나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게 하소서. 먼저 용서를 구하게 하소서. 모든 성도들이 망가지고 끊어진 관계들을 회복하게 하소서. 서로 사랑하고 더욱 사랑함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이것이, 바로 이것이 부흥입니다. 모든 세대가 간절히 고대하는 부흥입니다! 영광은 여기에 있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주님의 영광을 주시옵소서!


[23-24절]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성부와 성자의 하나 됨, 서로 사랑함에 나도 함께 있길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영광을 보길 원합니다. 제가 주님께 사랑받는 자임을 세상으로 알게 하소서. 저는 삼위 하나님이 서로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받은 자입니다. 이 영광을 보게 하소서. 이 영광을 모든 교회가 보게 하소서. 그래야 용서하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화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오래 참을 수 있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래야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 이 모든 일이 삼위일체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속 반복하여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이것을 깨닫길 원하시는 마음이신 거죠? 그 마음을 우리에게 주세요. 성령님, 우리에게 이 마음을 가르쳐 주세요. 그래서 이 영광을 간절히 사모함으로 서로 사랑하기에 힘쓰는 우리가 되게 해 주세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사랑하신 예수님께 주신 영광을 보기를 원합니다.


[26절]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이 사랑이 그 안에 있는 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 사역에 동참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그들도 이 사랑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 그 사랑 안에서 하나 되어 함께 거하게 하소서.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을 알 때에 우리 안에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계십니다. 이 둘은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됩니다. 성령 하나님이 이 둘을 우리 안에 결속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가진 사람은 사랑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는 자는 예수로 사는 자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 거군요. 주님, 교회는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만 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정체성이요 가시성입니다.

 제가 예수님의 이 기도에, 이 사역에 동참하길 원합니다. 아버지의 이름을 날마다 더욱 알게 하소서. 그래서 사랑함이 날마다 풍성해지는 삶을 살게 하소서. 사랑하며 살길 원합니다. 이 속에 감추어진 영광을, 주여! 나는 보기를 원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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