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방루 Nov 22. 2018

울고 싶다.

검은 화면

 나는 잘하는 게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작은 가슴에서 피어나는 바람이라곤 사소한 욕망뿐이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그런 것들. 이따금 떠오르는 원대한 생각들은 그저 생각의 방 속에서 왕 노릇 할 뿐이다. 나는 그걸 내가 사는 세상으로 불러올 능력이 없다. 나이를 먹는다. 책임이 늘어난다. 나는 이것들을 짊어질 힘이 없다. 죽는 그 날까지 사소한 욕망과 뜬구름 같은 상상들을 유희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평생 아르바이트를 해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날 그렇게 내버려 두질 않는다.


 나는 우울한 사람이다. 아직도 스스로 살아 있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생일을 비밀로 숨기고 생일 축하받으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의 생일은 나의 존재를 점찍는 하나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에 매우 능숙하다. 제법 어울리는 치장들로 나의 우울을 꾸미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행복 이상의 어떤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기에 나조차 우울을 망각할 때가 있었다. 세탁하지 않은 옷을 그저 보이지 않게 구석에 밀어 넣고 그 앞을 예쁜 옷들로 채워 넣은 마음엔 이따금 구릿구릿한 냄새가 느껴졌다.


 울어본 게 언제지? 목놓아 시원하게 울어본 기억이 사라졌다. 사랑에게 버려졌을 때도 나는 울지 않았다. 그 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방울의 눈물도 사랑을 위해 흘리지 않았다. 오늘도 참으로 오랜만에 나의 우울을 대면하며 심장이 까뒤집어지는 감정을 느꼈음에도 나는 울지 못했다. 차라리 울고 싶었다. 목놓아 울고 나면 조금은 괜찮아질 것만 같았다. 우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목놓아 울던 나의 사랑아, 네가 참 보고 싶다. 네가 나 대신 울어주는 모습을 보면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다.


 사는 이유가 뭘까?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떤 목적으로, 어떤 기대로, 어떤 이유로 살아내고 있는 걸까? 그럴싸한 이유를 나에게 알려준다 해도 그다지 살고 싶지 않은 심정이지만. 아무 의욕이 없는 시간들을 영화로 채워가고 있다. 영화엔 항상 엔딩이 있다. 검은 화면 위로 올라가는 수많은 이름들. 내 삶도 그렇게 끝나길 바란다. 행복한 어느 순간에 검은 화면을 만나고 싶다. 아니, 검은 화면을 만나는 그 순간이 행복의 순간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_바울Paul, Apostle Of Chris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