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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Lee Mar 26. 2024

갑과 갑질은 누구에게

성찰은 성숙의 길이여


우리 사회에는 갑질하는 이를 향한 질타가 대단하다.

사역지에 핀 "게이트 풀"이 자기 자리에서 아름다운 자취를 보여준다.


내가 당하면 을이고, 상대방을 향하여 갑으로 정하고 갑질한다고 불쾌감을 표시한다. 이때 평상시 차별을 받았거나 외압으로 불공정한 대우를 받은 이들이 들고 일어서 벌떼처럼 동조한다. 반면, 갑이라 여기 이들은 보통 조용히 을들의 행동을 멀리서 바라보며 어서 감정이 식혀지길 기다린다. 


내가 권리를 상호 인정할 선을 넘어 강하게 행사하거나, 지시하거나 명하는 경우에도 자신을 을이라 생각할까? 자신을 향하여는 한없이 너그러운 모습을 보인다. 결코 자기는 갑질한다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마땅히 그럴만한 자격이나 위치에 있다고 자위한다.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스스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라고 책임론을 들고 일어서기도 한다. 


그래서 보통은 갑이나 갑질은 상대방에게 적용되지 본인에게는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를 상정하여 늘 을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그런가? 


이 평행선을 달리는 사고는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는 그러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삶이 전제할 때 서로에게 화평과 관용이 실행될 수 있겠다 싶다. 


집에 와서 청소해 주는 아주머니가 있다. 그 이름은 Kate이다. 지난 토요일에 아무런 연락 없이 출근하지 않아 혼자 집을 청소해 두었다. 저녁쯤에 윗집에 사시는 전 사모님으로부터 소식이 왔다. 그 도우미 아주머니의 아들이 교과서를 받는 날이어서 학교에 가게 되어 결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로 다음 날에 출근 여부를 여쭙길래, 나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하다. 왜냐면 내가 이미 마음이 상한 체 청소를 해둔 상태이기에 그렇고, 그래서 차라리 오는 토요일에 왔으면 한다고 전했다. 


그런데 갑자기 김지숙 선생님이 시골에서 내일 갑자기 오후 4시경에 오신다는 카톡을 받게 되어 청소가 필요하게 되다. 


내일 원래 계획은 사역지에 가서 학교 오픈과 함께 몇 가지 일이 있어 출근하려 했다.  간다 하더라도 점심 후 바로 퇴근해야 하기에 조금은 피곤할 것 같고 하여, 저녁에 거기서 머물면서 몇 가지 할 것이 있기에 여의치 않아 계획을 바꿀 수 있는지 알아보게 되었다. 

수요일에 가면 점심 후 바로 집으로 돌아와야 하고, 목요일에 가면 하루 보내고 금요일 새벽에 오면 되겠다 싶은 것이다. 


그 Kate가 수요일에 오지 않으면 이번에 목요일도 오지 말라고 할까 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 원대로 안되면, 내 원하는 대로 이미 그녀에게 일감을 주기로 한 약속을 일방적으로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가 아닌가? 짧은 시간이지만 내일 오후에 와 일할 수 있다고 하여 도리어 다행이어서 감사하다. 



평상시 내 마음에는 여전히 상대방으로부터 오는 갑질에 대한 분노나, 불쾌감을 표하는 을이라고만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는 철저히 갑으로서 내 마음대로 안되면 약속이나 계획을 일방적으로 아무런 상의도 없이 철회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를 보게 된다. 확실한 갑이요, 갑질을 하고 있는 내가 아닌가. 늘 나는 당하는 자라 여기지만 실상 종종, 아니 때때로 상대방을 억울하게 함부로 독단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순간을 발견하고서 섬뜩한 자신을 보게 된다. 상대를 저평가하거나 상대방으로부터 당한 어려움만 호소하지, 내가 그렇게 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 과연 유익하고 필요할까?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하며 섬기는, 그러면서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는 자세와 태도가 절실히 요청된다.  본인 스스로를 약자로서 정하고, 상대방을 적으로, 질타의 대상으로 두는 나는 아니었는가? 기회가 되어 갑의 위치에 있으면 충분히 갑질을 하고도 남을 자신이지만, 현재 그런 위치에 있지 않다 보니까 도리어 을이라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여전히 나는 잠재적 갑이라 할 것이다. 양의 털을 쓴 이리이리라. 


옳고, 정당하다고 여기는 나에게 내가 던지는 말씀은 이것이다. “섰다고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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