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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Lee Jan 22. 2024

어항 속의 코이는 누구?

세상은 환경일 뿐, 나는 삶의 주체란다.


코이라는 물고기는 일본이 원산지이며 잉어과에 속하고 비늘의 화려한 색상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다고 한다. 이 물고기에 얽힌 법칙이 있는데 이를 코이의 법칙(Koi's Law)이라 한다. 이 법칙에 따르면,

코이는 어항에 있을 때는 10센티

큰 연못에 있을 때는 30센티까지

큰 강에 있을 때는 100센티보다 더 커진다. 이는 환경에 따른 성장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2023년 한국 국회에서 한 국회의원이 이 법칙을 제시하면서 장애인들을 위한 환경 개선을 강조한 연설로 선풍적 주목을 받기도 했지요.


이 법칙을 달리 표현해 본다.

이 코이가 어항 생활에 만족하고 순응하며 머무른다면 100센티 이상의 성장 가능성만 간직하게 될 것이다.  비록 시작이 5센티 사이즈의 피라미일지라도 말이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은 한다.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 큰 고기, 큰 사람, 큰 그릇인 것이다. 그런 물고기에게 강에 갈 기회가 주어지면 진정 큰 고기로 성장할 수 있으렷다.


첫 단계인 어항 속 생활에서 순응과 적응이 끝났는가?

이 때는 연못으로 들어갈 시기이다. 그동안 연못에 있었다면 강으로 가야 할 시기이다.

그대로 있으면 매너리즘에, 자기가 제일 잘 안다고 생각하며 왕 노릇하려 하고,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오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면 냄새난다. 아니 썩는다. 재미도 없다. 배울 것이 없다. 과거만 있을 뿐 미래는 없다.


코이가 수동적 물고기이다.

이 코이가 나라고 한다면 어떻게 적용할까?

코이는 생각한다. 이 조그마한 어항 때문에 키가 크지 않은 거야. 이런 연못에 갇혀사니 내가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 거야. 내가 미국에 때어났다면 벌써 큰 인물이 되었겠지. 그래서 운명적으로 나는 불행한 사람이야. 하지만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생각한다는 것은 변화의 여지가 있다 하겠다. 그러기에 다행으로 보인다


코이는 어느 날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 잠잠한 연못에만 살고 싶지 않아. 어항에 살 때보다는 좀 넓어 살만해. 이제 살아보니 너무 밋밋해. 별 변화가 없어. 재미도 없어. 더 넓고 변화가 많은 곳이 있다는데 나는 그곳에 가고 싶어. 들었는데, 물살이 있고 각종 수중 생물들과 만나는 강이라고 하더라고.


어느 날 그 강에 어느 날 던져졌다.


이런저런 환경에 처해지다.


과연 코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나를 잡아먹으려는 숱한 고기들 앞에서 내가 덩치가 커야 살겠구나. 최대한 납작 엎드리면서 잘 먹어야겠다. 거센 물살을 견딜만하려면 근육질로 나를 만들어야겠다. 물의 양과 깊이에 따라 타고난  성장 억제 호르몬이 작동하게 된다.


더 재미있는 상상을 이렇게 해보자.

강에 사는 1미터 이상의 코이를

연못에 넣었더니 30센티로 작아지는가?

아니 그 코이를 어항에 넣으니 10센티로 사이즈가 작아질까? 그럴 리가 있겠는가?


여하튼 환경의 개선으로 인한 성장과 변화는 어느 정도는 있다 하겠다.

여기에 더하여 객체인 코이를 주체인 사람으로  대체해 보자. 

어떤 환경이 주어져 있다 할지라도 사람이 어떻게 여건을 준비하거나 어떻게 주어질 환경에 걸맞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가능과 성장의  규모가 달라지리라 본다.


그럼, 어떤 이들이 성장하는지 살펴보자.

여기서 성장이라 함은 유형무형의 확장과 발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환경에 따라 자신의 성장이 결정된다고 보는 이들이 있다. 대부분의 환경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성장의 요소이기는 하다.


동시에 인격이 환경을 다스림으로 성장한다고 볼 수 있으리라. 인간은 인격적인 존재로서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자동적으로 동일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인격이 주체가 되어 주어지거나 스스로 만든 환경을 적절히 사용하기도 하거나 폐기하기도 한다. 인격으로 환경을 지배하거나 다스리는 자들로서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코이가 보는 삶의 터전인 환경 즉, 어항, 연못 그리고 강을 어떻게 보는가?

코이 물고기로서는 환경 성장 논리에 맞아떨어질 수 있다. 물이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도 같을까? 오히려 물보다는 산소가 들어있는 공기가 없이는 살 수 없다.

여기서 고려할 것은 환경을 취사선택하거나 결정할 권위가 바로 사람에게 있다는 것이다.


내 삶의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외부로부터의 이유나 핑계로만 자신을 합리화한다면 이웃이나 사회 그리고 국가는 나의 대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요  삶의 주체인 사람이 어찌 어항 속에 있는 코이와 같이 주어진 환경에만 기대려 하겠는가!


처음에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자.

다음은, 환경을 나에 맞게 만들자.

그다음은, 내 인격이 다스리는 환경 속에서 성장하자

그리고 그다음은, 나의 성장이 우리의 성장이 되게 하자.


이런 인격이 주도하는 환경과 성장을 기대하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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