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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Nov 02. 2022

[서평] 편지 쓰는 법

수취인불명(受取人不明)


안녕하세요. 날씨가 제법 가을에 닿았습니다. 긴팔 셔츠를 꺼낼 고민을 하며 하늘을 보니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색입니다. 온통 한 가지 색色이라 거리가 가늠이 안 되네요. 어쩌면 하늘 끝이 손에 닿을 만큼 가까울 수도 있고, 아니면 아주 먼 곳 그 끝이 하늘색일 수도 있겠지요. 물론 과학적이지 않은 생각입니다. 저는 교정에 앉아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당신이 계신 곳은 어떤가요?



책 <편지 쓰는 법>을 읽으며 지난날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저 스스로를 편지 쓰기 좋아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사실이기도 하지만 아니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제겐 부치지 못한 편지가 몇 있어요. 그중 하나는 후배가 야외 결혼식을 한 날. 날이 몹시 흐려 걱정하던 후배를 보며 그 자리에서 쓴 편지예요. 날이 흐려서 너희가 더욱 빛난다고,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을 담은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는 아직 제게 있어요.



또 하나는 두터운 편지 뭉치입니다. 삼 년 전 가르치던 학생들에게 받은 편지 한 부분에 제가 답장을 쓴 편지 스물아홉 통이에요. 한 쪽엔 학생이, 한 쪽엔 제가 쓴 편지죠. 사제 간 편지 쓰기 행사였는데 학생들이 성심껏 써준 편지를 받고 연말에 꼭 답장을 써 주겠다고 말했죠. 학생들은 제 답장을 기대하며 썼을 텐데 저는 답장을 써 놓고도 주지 않았답니다.



편지를 쓰고 보내지 않거나 숨겨 놓거나 또는 버렸던 일들이 많아요. 부끄러운 마음이 더 강한 거죠. 이 부끄러움은 수줍다는 뜻이 아니에요.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속상한 마음에서 비롯한 부끄러움입니다. 글을 써내는 능력이 부족하달까. 그런 부끄러움이 편지를 보내지 못한 원인이 되었어요. 쓰고 버리고 다시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다 보면 생각이 너덜해집니다. 전혀 다른 내용으로 변질된 생각은 상대에게 가닿지 못한 편지가 됩니다. 왜 이렇게 글을 못 쓰는 걸까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어요.



저는 서평과 감상문 사이 어딘가 어중간한 글을 쓴 지 일 년 하고 4개월 즈음 되었어요. 브런치는 3개월이 되었네요. 그런데 쓰고 싶다는 마음은 20여 년 전부터 가졌지요. 다시 말하면 첫 문장 쓰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렸고 용기를 낸 지는 2년이 아직 안 된 거죠. 용기를 내지 못해 답답한 마음으로 쓴 첫 문장이 아직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도 아니어서 아무것도 쓸 수 없다. 오랜 고민이다." 오글거리지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문장 이후로 글을 쓰게 되었어요. 생각을 그저 글자로 옮겼을 뿐인데 말이죠.



여전히 부족한 글이고 갈 길이 멀지만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이 있을까 싶어 용기를 내어 편지를 씁니다. 누가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글쓰기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께서 어떤 것이든 무엇이든 한 번 써 보셨으면 합니다. 그 글이 당신을 성장하게 하고 치유해 줄 거예요. 아, 저는 성장했냐고요? 네. 뭐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이 책 <편지 쓰는 법>이 아니었다면 편지 형식으로 글을 쓰진 않았을 거예요. 이 책은 아날로그 시대로 회귀하자, 편지 감성을 되살려보자는 책이 아닙니다. 부제가 말하는 바, 손으로 마음을 전하는 일이 진심을 전하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책이에요. 편지가 사람 마음을 건드릴 수 있고 특별함을 전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요. 읽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금 당장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가득한 책입니다.



저는 여기까지 쓰려고 합니다. 육사 선생이 청포도가 열린 모습을 '주저리'로 표현하여 단어가 아름답게 미화됐는데, 저는 주저리 말이 많았습니다. 육사 선생께 죄송합니다.


#편지쓰는법 #유유출판사 #문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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