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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Jun 24. 2022

독서와 음악

책과 vinyl

용변은 건물 밖 재래식 화장실에서, 목욕은 물을 끓여서 했던 때,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이다. 우리집 유일한 교통수단이 아버지 자전거였고, 습기 찬 곰팡이 냄새로 진동했던 다락방이 내 방이었다. 그런데 그 가난에 맞지 않게 고급 전축이 집에 있었다. 어머니는 전축과 클래식 LP 판, CD를 소중히 다루셨고 나 또한 그랬다.


그때부터 바깥 활동보다 집에서 클래식 듣는 일에 취미를 붙였다. 호기심 많은 애들과는 달리 난 메커니즘에는 관심이 없었고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나오는 ‘음악’에만 관심이 있었다. 과정은 다음과 같다. 듣고 싶은 LP 판을 골라 조심스럽게 꺼내는 게 중요하다. 지문이 묻지 않게 끝부분을 조심스레 들어 플래터 위에 올린다. 톤암을 수직으로 올리고 vinyl 가장자리-선이 없는 부분까지 수평으로 이동해 다시 수직으로 내리면 라디오 주파수 맞추는 듯한 잡음이 살짝 나온 후, 음악이 흐른다.


vinyl을 뒤집거나 교체해야 하는 타이밍은 생각보다 빨리 온다. 한 면을 여러 번 듣기도 하고 한 장을 반복해서 듣기도 하고 다른 음반을 들을 때는 또 조심조심 손끝으로만 만지며 교체한다. 그런 작업들은 귀찮지 않다. 오히려 내 손끝이 닿아야 음악이 흐르기 때문에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마치 내가 그 오케스트라 단원이 된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단원이 좀 오버스러우면 스태프 정도? 그래서 LP로 들을 때는 꼭 ‘감상’만 해야 한다. 다른 행위는 허락지 않는다. 음악을 뒷배경에 두는 수동적 감상자가 아니라 음악에 참여하는 적극적 감상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과정이 책을 읽는 행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손끝으로 책의 낱장을 넘기며 능동적으로 의미를 구성하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같다. 그래서 내 경우에 독서와 LP는 겸하지 않는다. 독서에 몰입하면서 동시에 음악에 집중하는 일이 실제 가능한지 의문이 들기도 하거니와 누군가는 그게 가능할지라도 나는 두 행위를 동시에 적극적으로 할 수 없는 단세포적 인간이기 때문이다.


여하간 어린 시절 클래식 듣느라 핑클이니 H.O.T니 전혀 모르고 살았고, 학교 끝나면 vinyl 돌아가는 모습 보며 감상하는 일이 그 시절 내 기억의 전부다. 몇 번의 이사 끝에 그 전축과 vinyl들, CD들은 자취를 감췄고 당시 인기를 끌던 MP3로 여전히 클래식은 즐겨 들었다. 그러나 그 시절 LP 추억 위에 삶의 시간은 켜켜이 쌓여 층위를 이루었지만 여전히 그로부터 자양분을 얻고 있다.


지금의 나는 그때 내가 듣고 읽은 자아의 총체임을 이렇게 또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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