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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Jun 28. 2022

[서평] 완전한 행복

소설과 현실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


현실은 소설보다 잔혹하다. 잔혹함의 한쪽 끝에는 다시 들춰지지 않길 바라는 비참함이 있다. 


참혹한 사건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그런 참사가 가능하게 된 이 사회 시스템에 문제는 없었는가이고 두 번째는 피해 가족을 어떻게 위로(애도)해 줄 수 있는가이다. 사건의 본질을 추적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논의는 그다음 일이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행복을 “덧셈이 아닌 뺄셈,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는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한 자(신유나)가 죽음으로써 뺄셈의 행복은 부정된다. 그러나 가감산加減算의 행복론을 펼치면서 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위로와 연민을 감減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사이코패스 단어를 소환하여 범죄의 원인을 ‘성향’에 가두고 면죄부를 준다. 이 부분에서 작가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실제 사건을 굳이 끄집어냈다면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소설 속 가해자(신유나)는 정당한 처벌 없이 자살로 삶을 마감(더 이상 행복할 수 없으니 자신을 사회에서 뺐다.)하고, 남은 피해자는 비참하고 외로운 삶을 사는 모습으로 끝난다. 뺄셈 행복의 끝에 정의가 없었고, 덧셈 행복의 가능성은 없었다. 소설 장르의 결말을 딴지거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비극적이고 참혹한 소설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고유정 사건과 이 소설이 병치된다는 사실이다. 실제 사건을 다루었으면 이 소설 결말에 어느 정도 책임을 가져야한다.



그렇다면 작가는 단순히 ‘행복’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어떤 TV프로그램에 출연해 발언한 부분을 살펴보자. '7년의 밤' 모티브가 된 사건에 대해 설명하며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가해자가 옆 아파트에 살고 있어 동네 주민을 취재했다고 밝히면서 그는 사실이 기반으로 된 내용이 아니라 당시 동네에서 떠돌던 소문을 언급하며 피해자인 아동과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가해자가 살던 아파트 경비원이 가해자에 대해 '성실한 가장이었다'고 말한 부분을 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떤 게 진실인지는 몰라요. 저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사건 이면에는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있다. 이걸 독자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드러나지 않은 진실은 가해자가 '성실한 가장'이라는 점이다. '성실하다'는 단어와 범죄 사실은 아무 연관이 없다. 이 발언은 가해자를 감싸는 발언으로 가해를 감減해줄 수도 있고 같은 이유로 피해자 가족에게는 또다른 아픔을 가加해줄 수도 있다. 정 작가가 말하는 가감산加減算 행복론이 이런 것일까.



다시 책 <완전한 행복>으로 돌아간다. 책을 갈무리하며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악인의 내면이 아니라, 한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타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방송에서 한 말과 포개지는 지점이 있다. 피해자에 대한 애도가 없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아픔이 작가에겐 상업적 이야깃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게 내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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