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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Jun 29. 2022

단어와 뜻

상대방이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스페인에서는 ’¡pobrecito!’라고 한다. 우리말로 “너무 안됐다.”, “아이고 저런.”, “유감이야.”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이 말의 본뜻이 재미있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이라는 말뜻을 가진 형용사인데, 위로의 말로 건네기에 적절한가를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pobrecito [형용사] 아주 가난한,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민중서림 엣센스 스페인어 사전]




우리말에도 말의 본뜻을 모르고 상황상 관습적으로 쓰는 말들이 있다. 지랄은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지만 원래는 ‘간질’(癇疾)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염병도 비슷하다. 염병은 전염병, 특히 장티푸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인데, 본래 장티푸스는 전염성이 강해 주변인들 목숨까지 앗아가는 위험한 병이다. 지금이야 치료제가 있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겠지만 당시엔 생사를 넘나드는 무서운 병이었으니 상대를 저주하는 욕으로는 제격이었을 것이다. 이 둘이 합쳐지면 '지랄 염병하네'인데, 간질에 장티푸스까지 걸리라고 저주하는 꼴이다. 크게 와닿지 않으면 최신 버전으로 '메르스에 코로나까지 걸려서 주변인들에게 민폐나 끼쳐라' 정도가 아닐까.


지랄 [명사] 

1.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

2. ‘간질’(癇疾)을 속되게 이르는 말.  


염병 [명사] ‘장티푸스’를 속되게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또다른 예로 뗑깡이 있다. 뗑깡은 일본에서 건너온 말인데, 뜻은 지랄, 즉 간질을 의미한다. 보통 어린아이가 떼를 쓸 때 '뗑깡부리다'라고 표현하는데 본뜻을 떠올린다면 쓰기에 적절하지 않다. 사고 싶은 물건 앞에서 소유의 욕구를 강력하게 표현하는 내 아이를 간질병에 빗대는 것보다는 생떼부리지 말라고 달래는 것이 더 낫다. 말의 힘을 믿는다면.


뗑깡[명사] ‘생떼(生-)’를 속되게 이르는 말.                                                                         -[표준국어대사전]




번외로 몸살이라는 단어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살(煞)은 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모질고 독한 귀신의 기운을 뜻하는데, 이것이 몸과 결합하여 몸살이 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추위에 몸을 부르르 떠는 모습이 마치 귀신 씐 모습과 같다고 해서 몸살이라는 단어가 된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학생들에게 합성어를 가르치면서 문득 떠올랐던 생각인데 아닐 수도 있다.) 몸살의 뜻이 위의 추론과 같다면, 추위에 심히 떠는데 심지어 근육통까지 동반하는 감기에 걸린 사람에게 ‘몸에 살 맞았다.’, ‘네 몸에 귀신이 쓰였다.’고 하는 게 과연 맞는 것일까?


몸살 [명사] 몸이 몹시 피로하여 일어나는 팔다리가 쑤시고 느른하며 기운이 없고 오한이 난다.

                                                                                                                                             -[표준국어대사전]




’¡pobrecito!’를 사용하는 스페인 사람들은 그 말의 본뜻이 무엇인지 알고 쓰는 걸까? 라고 9600km 떨어진 한국 사람이 염려하고 있다면 스페인 사람은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pobrecito! 라고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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