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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Jun 30. 2022

[서평] 남자가 된다는 것

-문학동네 티저 북

이 책은 단편소설집 <남자가 된다는 것>이 정식 출간하기 전 문학동네에서 세 편만 실어 보내준 티저 북이다. 각 단편을 간략히 소개한다.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소재는 성性이다. 이때 성性은 육체적 관계를 의미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을 나누는 그 성性, 그렇다고 이분법적인 성性 구분으로 젠더 문제를 보여주려는 성性이 아니라 남성性 안에 잠재한 폭력성性, 문화와 종교가 그려내는 남성성性을 비틀어 보여준다.


단편 <스위스>는 사춘기 소녀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란에서 스위스로 망명한 가족의 딸 소라야는 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의지가 강하고 자유로우며 어떤 일에도 끄떡없고 자기 내면의 명령을 따르는” 소라야에게 ‘나’는 매력을 느낀다. 어느 날 혼자 제네바 밤거리를 걸을 때 남자들이 던지는 추악한 추행에 직면한다. 그 남자들은 흑인과 멋진 양복을 입은 유럽 남자 등 인종을 가리지 않았다. ‘나’는 깨닫는다. “남자를 끌어당기는 힘, 그런 힘이 생길 때는, 무서울 정도의 취약함도 함께 온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 취약함은 강인함이나 대담함으로 균형 맞출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믿음은 소라야에게서 나왔다. 당시 소라야는 네덜란드 은행가를 만나고 있었는데 그 은행가는 분수 물이 솟구칠 때 흥분하고 집 반대쪽에서 이쪽이 훤히 보인다는 확신이 들 때 커튼 없는 창가에서 부인과 섹스를 즐기는 남자다. 그 남자와 밀회를 즐길 때 부인에게 온 전화를 옆에서 듣는다. 그 전화를 받는 남자 모습은 소라야를 통제하고자 했던 모습과 대조를 이룬다. 그렇게 소라야는 균형을 맞추는 듯 보이지만 폭력에서 완전히 벗어나진 못한다.


세월이 지나 ‘나’는 딸 둘을 낳았고, 특히 겨우 열두 살인 둘째 딸은 남자들 앞에서 움츠러들기를 거부하는 당당함이 있다. 그 딸에게서 ‘나’는 소라야를 떠올린다. 폭력적인 남자에 맞서 당당함을 잃지 않던 소라야의 모습을 통해 폭력적인 남성성性에 경멸에 가까운 냉소를 보이지만, 노골적이진 않다.



<에르샤디를 보다>는 영화배우 에르샤디를 선망하는 두 여자 이야기가 나온다. 한 여자는 부상으로 발레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또 한 여자는 죽음을 목전에 둔 암 환자 아버지를 병간호하던 상황에서, 각자 영화를 봤다. 허무함에 존재 자체가 흔들리던 두 여자는 영화 속 남자를 “남자들의 사랑으로, 신의 이름으로 주어진 선물이라 믿으며 그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홀리듯 그를 선망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이제 그 너머를 본다. 신과 남자의 이름으로 자행되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허구였고 거짓이었음을.



<아무르>에는 소피와 에즈라 커플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을 그린다. 그들은 “서로에게 단단히 묶여 있는” 관계였고 “확고하며 붙박이”같은 존재였다. 소피는 추운 겨울날 자신에게 코트를 벗어주겠다는 친구를 통해 에즈라는 그러지 못한 남자임을, 자신이 피를 흘려도 관심조차 주지 않는 남자임을 문득 깨닫는다. 영화 <아무르>를 보면서 이 남자는 자신이 아파도 자신을 돌봐줄 능력이 없는 사람임을 알고 결혼을 포기하고 헤어진다.



제목처럼 ‘남자가 된다는 것’은 남자가 자신 안의 숨겨진 폭력성과, 종교가 근엄함으로 포장한 모순을, 그리고 거기서 비롯한 남성 우월 문화를 직시하고 인정하고 탈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 편이 전해주는 이야기가 그렇다. 여타의 페미니즘 소설과는 조금 결이 다른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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