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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ul Quinn Jul 06. 2022

[서평] 캔터베리 이야기(상)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상)


<캔터베리 이야기>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캔터베리로 순례길을 떠나는 서른 세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숙소에 모였다. 이들은 다음  아침 일찍 함께 길을 떠나기로 했는데 이때 숙소 주인이 제안을 한다. "가장 교훈적이면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를"  사람에게 나머지 사람들이 돈을 내어 저녁을 대접하는 일이었다. 스물아홉  인물들이 펼쳐 놓는 이야기들을 누군가가 기록하는데 이름은 초서다.   저자와 이름이 같다.



초서는 캔터베리 순례길에서 인물들이 하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한다. 즉  이야기 속에 이야기가 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 이유는 첫째, 등장인물의 이야기들이 설득력을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노렸을 수 있다. 마치 호메로스가 여러 겹으로 텍스트를 포개어 만든 <오뒷세이아>와 같다. 또한 신분과 직업이 다른 인물들 입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서술하기 때문에 시대 묘사에 신빙성을 획득할 수 있다.



둘째, 이 서사시는 기독교적 주제로 이루어진 작품인데 등장인물 언행들이 주제와 많지 않은 경우가 있다. 직업군은 귀족, 기사, 성직자에서 평민까지 다양한데 이들이 함께 순례길을 떠나면서 나눈 이야기들과 행동은 다소 세속적이다. 그래서 나는 풍자로 보았다. <법정 변호사 이야기>는 가장 종교적인데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숙소 주인이 뜬금없이 '제기랄', '씨팔' 같은 욕지거리를 한다. 상황 자체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넣는 구조를 통해 서술자와 작가는 종교적 도덕성에서 자유를 얻은 반면, 다른 인물들은 도덕성에서 피할 길이 없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이다. "그들의 이야기가 좋건 나쁘건 간에 그대로 옮겨 놓아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뿐입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제가 이야기를 왜곡하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그 책임을 인물들에게 모두 떠넘기지만은 않는다. 이를테면, 음담패설 이야기도 나오지만 "재미로 하는 이야기를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마시고요."라며 빠져나갈 구멍도 마련해 둔다. 형식이 주는 묘미다.

<바스에서 온 부인의 이야기> 중 음담패설


알베르토 망구엘이 쓴 <독서의 역사>에 제프리 초서(<독서의 역사>는 조프리 초서로 나오는데 '제프리 초서'로 옮긴다.)는 "자신의 작품을 청중들에게 읽어 주었던 것으로 추측된다."라고 서술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도 소리 내어 읽으라고 글을 썼다. 그러나 우리가 원서로 읽지 않는 이상은 <캔터베리 이야기>의 청각적 기교를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영문학 창시자'이자 '영문학의 아버지'인 초서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렵다. "초서의 문체는 고전적인 웅변가들의 기교에 구어체적인 표현과 음유시인 특유의 표현을 가미한 것이어서 초서와는 끝없는 세월의 강을 사이에 둔 오늘날의 독자도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텍스트를 눈으로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득한 세월의 강을 훌쩍 뛰어넘어 그의 음성이 마치 귓가에 들리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라는 망구엘의 찬讚을 100%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사랑, 전쟁, 종교, 미덕, 인간의 나약성 등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주제에 초점을 맞추어 읽는다면 비록 세속적 묘사와 풍자 부분이 있지만 순례길 노정路程에 우리도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다음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듯하다. <오뒷세이아>(숲, 천병희 역)를 읽으면 비슷한 구성 방식이 기원전에 이미 있었다는 점에 감탄할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을유세계문학전집 42)를 읽으면 이 책 <기사의 이야기>파트에서 테베 왕 크레온 다음에 이어지는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크레온은 오이디푸스 왕의 처남이자 외삼촌이다. 나름 하이퍼텍스트적 독서다. 또한 우리나라 <삼국유사>(을유문화사, 이민수 옮김)도 곁들여 읽으면 중세 동서양 설화 민담 모음집을 직접 비교할 수 있는 사치도 누릴 수 있다.


오뒷세이아(숲, 천병희 역)           오이디푸스 왕 외(을유, 김기영 옮김)            삼국유사(을유, 이민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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