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에서 왕씩씩이로
붙어있는 책상 두 개에 나란히 앉은 두 아이가 있다. 그런데 세상의 관심은 오직 한 아이에게만 향할 뿐 옆에 앉은 아이는 있으나 없는 듯하다. 모두의 관심을 받는 이는 정은, 유령 같은 아이는 바로 나 자신으로 지난 1년을 왕따로 살아온 탓에 학년이 바뀌었어도 왕따의 본분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의 난 스스로를 소중하게 여기거나 다독일 줄 몰랐을 것이다. 고작 10살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버거운 날들이었기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정은은 얼굴도 예쁜 데다 성격도 좋고 공부에 달리기까지 잘하는 팔방미인이었다. 반 아이들 모두는 정은에게 자석처럼 달라붙었고, 나는 가장 가까이 있었지만 멀게만 느껴졌다. 주동자가 전학 가며 괴롭힘은 없어졌지만 친구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잊은 내게 어느 날 정은이 물었다. 점심시간이었는데 "넌 왜 안 나가?" 나는 별다른 답을 하지 못했고, 정은은 그런 내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같이 놀자"
11살 아이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 이 한 마디는 곧 마흔을 바라보는 현재의 내 마음까지도 일렁이게 만든다. 모두가 기피하는 내 손을 잡은 정은은 아무렇지 않게 나와 함께 했고, 바로 전날까지도 왕따였던 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루 만에 보통의 아이가 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고, 뛰어놀고 친구의 집에 놀러 가는 평범한 일상을 일 년여 만에 되찾은 것이다. 그리고 정은은 또 물었다. "누가 널 괴롭혔어?" 나는 그간의 일들을 말했고 정은은 또 한 번 내 손을 잡아끌고 교실을 나섰다. 학년이 바뀌며 다른 반으로 진학한 아이들에게 일일이 데리고 가서는 "너 폴순이에게 사과해"라고. 그러자 반박하는 아이 하나 없이 모두가 내게 사과를 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물론 가장 악질이었던 주동자는 전학을 가고 난 후라 직접적인 사과는 받을 수 없었지만, 후에 미안하다며 편지를 보내오긴 했다.)
어른이 되어 생각해도 신기한 그때의 일, 고작 열한 살의 어린 정은은 어떤 어른보다도 건강한 정신을 갖고 있었고 정의로웠으며 용감했다. 그리고 난 내가 그때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열 살에 한 번 죽고, 열한 살에 다시 환생했다고. 그때 회복한 자존감, 자신감으로 이날까지 살아온 나이기에 매 순간 정은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중학교에 진학하며 나는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이후 대학에서 정은을 다시 만났지만 각자의 대학 생활이 너무나 재밌는 탓에 친하게 지내진 못했는데 서른 중반의 어느 날 정은이 내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아줌마와 집안의 걱정거리인 노처녀로 만난 우리, 평생을 간직해 온 고마움을 전하며 어린 시절이 떠올라 눈물 흘리는 내게 정은은 이렇게 물었다.
정은: "내가 그랬다고?"
나: 네......? (감동 파사삭)
완벽한 T형에 다소 건조한 인간으로 성장한 정은은 그저 나와 친했던 것만을 기억할 뿐, 본인이 그렇게 정의로운 어린이 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심지어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도 낯 간지러워하는 성격의 무뚝뚝한 아저씨 같은 정은 ㅎㅎ 아무렴 어떤가 내가 기억하고 이렇게 기록하면 그걸로 됐지. 영원히 잊지 못할 거야 덕분에 내가 제 몫을 하는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늘 말하고 싶었어.
여리여리한 비주얼과 다르게 정말 아저씨 같은 성격에 본인 결혼할 땐 나를 부르지도 않아놓고 나에겐 빨리 청첩장 달라 보채며 내 결혼식날 누구보다 빨리와서는 내내 곁을 지켜주었던 정은. 심지어 가방순이보다도 먼저 왔다. '나는 너 결혼하는 것도 몰랐다 왜 부르지도 않았냐'는 내 말에 그땐 왕래가 없었으니 그게 당연하다면서도, '그럼 내 결혼식에 오되 축의는 하지 말라'는 말은 가볍게 무시하며 두툼한 봉투를 건네준 정말이지 요상한 나의 친구. 정말 널 만나 얼마나 다행인 인생이야~ 안 그래? 우리 함께 오래도록 행복하자. 그리고 밥 좀 많이 먹어라 신부보다 마르고 뱃살 하나 없는 건 반칙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