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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순 Sep 09. 2024

방황할 틈이 없었던 나의 10대

멋진 친구들이 곁에 있었기에

지금부터 많이 등장할 '할매'는 나의 근본인 친할머니 옥란할매이다.


이혼 후 돌싱남의 삶에 충실한 아빠를 두고 나는 홀로 할매의 원주로 떠나왔다. 인생의 새 챕터가 시작된 것이다.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던 당시 할매는 집 근처의 작은 학교에 가길 바랐으나, 나는 시내의 큰 중학교로 진학을 결정했다. 정은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한 이후 나는 꽤나 자주적인 아이가 되어 있었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싶었다. 


"누가 도시락에 똥을 싸왔어!" 

점심시간, 내 도시락이 오픈되자 누군가 소리쳤다. 할매가 보온 도시락에 정성껏 담아준 청국장을 보곤 똥냄새가 난다며 누가 도시락에 이런 걸 싸 오냐 호들갑을 떠는 아이 하나의 말에 반 친구들 모두 동요하기 시작했고 자존감을 다 회복했다던 나는 금세 또 주눅이 들어버렸다. '똥 같은 청국장을 싸 온 바람에 또 왕따를 당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불안감에 휩싸이는 순간 '지헌'이 나섰다. "야 너네는 청국장도 안 먹어봤냐? 청국장이 얼마나 맛있는 건데!" 하며 한 숟갈 듬뿍 퍼먹는 지헌. 그 모습에 거짓말처럼 방금의 소동은 온데간데없이 모두들 '맞아 맞아'하며 상황이 종료되었다. 이게 나의 중학교 시절 첫 점심시간의 기억. 


자칫하면 분위기에 말려 쭈구리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내 앞에 나타난 또 하나의 정의로운 친구. 지헌은 입학할 때부터 예쁘장한 얼굴에 모두를 아우르는 리더십 있는 성격으로 친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헌의 현명한 대처에 깔끔하게 종결된 똥 도시락 사건 이후 나는 급속도로 지헌과 친해지게 되었으며 덕분에 나의 중학교 생활이 순탄하게 시작될 수 있었다. 이후 2학년 때도 지헌과 같은 반에 진학하며 즐거웠던 한 때를 보냈는데, 3학년 개학을 앞둔 시점 지헌은 갑자기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인생에서 고작 2년 남짓 친했던 친구였지만 내 자존감이 업그레이드될 수 있도록 길을 터준 두 번째 터닝포인트가 되어준 친구. 


그리고 중3, 새로운 친구 '윤경'이 나타났다. 윤경은 똑부러지는 성격의 전형적인 모범생이자 우리 반 반장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공부머리도 없고 하기도 싫고 그저 노는 것만 좋아하는 철없는 아이였는데 접점이 없을 것 같던 우리가 왜 친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날 보니 친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그리고 1학기 첫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온 날, 나는 당연히 공부를 안 했으니 성적이랄 게 없었고 평균은 40점이 채 되지 않는 심각한 점수를 자랑했는데 윤경은 그런 내 성적표를 빼앗아 들곤 진지하게 말했다. "폴순아 너 이러다가 저기 시골에 있는 @@ 고등학교도 못 가"라고. "웅 그게 왜?" 나의 해맑은 대답에 윤경은 마치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얘기하듯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진학, 그리고 먼 미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잘 알아듣지 못하자 너 지금처럼 공부 안 하면 인생 망한다는 짧고 굵은 한 마디로 정리하곤 우리 할매에게 찾아가 "할머니, 폴순이도 제가 다니는 학원과 독서실 좀 끊어주세요"라고 요청했다. 그 길로 나는 윤경과 함께 학원 수업을 함께 듣게 되었고, 학원이 끝난 후 도망가려 하면 귀신같이 알아채곤 독서실에 끌려가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공부를 안 했으니 한 번에 잘 될 리 없는 나를 붙들곤 1학년 지식부터 알려주기 시작한 윤경, 내가 배고파하면 분식집에서 만두를 사다 먹였고 졸려하면 물고문을 하며(약간의 오바 보태서) 그렇게 공부를 시켰다. 시험 기간엔 아예 본인 집에 데려가 합숙을 시키기까지 한 결과 중 3 마지막 즈음엔 평균이 80점대가 되어 있었고 나는 지역의 마지막 인문계 고등학교에 간신히 입학할 수 있었다. 공부를 잘했던 윤경은 당연히 상위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헤어지게 되었는데, 그때는 잘 몰랐으나 성인이 되고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신기하고 궁금했다. 당시 공부에 피아노 레슨까지 받느라 바빴던 윤경은 대체 무슨 사명감으로 나를 위해 그 노력을 한 걸까. 


나는 누가 봐도 촌년이었고 특별할 게 없었다. 어쩌면 부모의 이혼은 탈선의 타당성을 뒷받침해 줄 좋은 핑계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 곁에는 늘 멋진 친구들이 있었고, 그들은 내가 방황할 틈을 주지 않았다. 그래봤자 14살, 16살 어린아이들이었는데 그들은 어쩜 그렇게 멋있는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걸까. 초등학교 때 정은을 만나 죽어가던 영혼이 깨어났고, 중학교에서 지헌과 윤경을 만나 '멀쩡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으니 나는 참 운이 좋은 사람이다. 나이를 떠나 인생에 힘든 시기가 찾아왔을 때 곁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미래는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몸소 체험했기에, 학교폭력이나 직장 내 괴롭힘 등의 이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뉴스를 접하면 그렇게 마음이 시릴 수가 없다. 단 한 명이라도 그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과 함께. 아무튼 그렇게 나는 '이제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는데..


에필로그

성인이 된 후 윤경과는 간간이 소식만 물으며 지냈고 결혼식 때 보는 게 다였는데, 올해 윤경의 생일엔 먼저 연락을 해보았다. 평소 카카오톡 생일 알람을 거의 보지 않는데 이번엔 눈에 띄었던 나의 어린 선생님의 생일. 윤경 또한 그 시절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알게된 사실인데 윤경이 내게 올드보이처럼 먹였던 만두의 정체는 사 온 게 아니라 당시 칼국수집을 하시던 윤경 어머님의 가게에서 몰래 훔쳐온 것이었다고 한다. (윤경은 불효녀 또는 착한 장발장이었던 것이다.)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멋진 워킹맘 윤경아, 훌륭한 엄마 밑에서 자란 너의 아이들은 올곧게 자라날 걸 믿어 의심치 않아, 그 시절 정말 고마웠고 늘 사랑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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