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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폴순 Sep 16. 2024

산만한 아이와 신문이 만났을 때

좋은 어른, 좋은 선생님의 역할

우리가 살아가며 '좋은 어른'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내가 어릴 때는 학생들을 그야말로 개 패듯이 패는 폭력 선생들이 어느 학교에나 존재했었고, 말도 안 되게 맞으면서도 사회 분위기상 그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었다. 요즘 같으면 뉴스 속보로 뜰 일들인데 그때는 그랬다.


고1, 재관쌤을 만나다.

윤경의 코치덕에 겨우 마지막 인문계 학교에 진학하며 정말 열심히 공부하겠다 다짐했었다. 그러나 깃털같이 가벼운 나의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공부보단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았고, 아이돌 덕질하는 게 좋았다. 당시엔 0교시부터 10교시까지 정규 수업을 들은 후 야간자율학습을 하는 게 일과였는데 나는 틈만 나면 야자를 도망쳐 오빠들 공연을 보러 다니곤 했다. 물론 사람이 누울 자리 봐 가면서 눕는다고, 담임 선생님이 호랑이같이 무서웠다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이지만 우리 재관쌤은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그렇게 허구한 날 담을 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꼭 화를 내고 때리는 것만이 무서운 게 아니라는 걸.


"폴순아 오빠들 재밌게 보고 있니? 항상 조심히 다니고, 내일은 늦지 말고 학교에 오렴"

당연하게 야자를 패스하고 공연장에 가있던 어느 날, 재관쌤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차라리 화를 냈으면 괜한 반항심에 더 열심히 야자를 쨌을 텐데 선생님의 다정한 문자에 동공 지진 마음 지진이 일었고 다음 날부터 나는 허락 없이 야자를 째는 일이 없어졌다. 정 놀러 가고 싶을 땐 허락을 구했고 그럴 때면 선생님은 늘 허락을 해주셨다. 그 이후는 잘 기억나지 않는 고1, 고2 시절을 보내고 대망의 고3.


아, 기억나는 친구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같은 중학교에서 진학한 친구 상이가 우리 반에 찾아와서는 요즘 왕따를 당하고 있다 고백했다. 본인은 원래 눈이 작고 찢어진 건데 친구들을 째려본다며 왕따를 당한다는 것. 당시 나는 상이랑 아주 친하진 않았어도 착한 성품 하나는 알고 있었기에 꼭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정의로운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어느 날 저녁 매점 가는 길에 마주친 상이 왕따의 주동자 세 명, 그들은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나는 답례로 다짜고짜 욕을 건넸다.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의 모든 험한 말과 함께 앞으로 상이를 또 괴롭히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를 했는데 그 결과 상이는 한동안 더욱 심한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이걸 또 나한테 말하면 악순환이 반복될까 봐 한동안 말하지 못했다고..(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뭐 결국 상이는 본인이 처한 상황을 스스로 해결했으며, 그 일을 계기로 우리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


고3, 재관쌤을 또 만나다.

당시 집에서 학교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로 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 반 지각 1등은 늘 나의 몫, 원래 가장 가까운데 사는 놈이 제일 늦는 법이다. 1학년에 이어 3학년때도 담임으로 만난 재관쌤은 할매에게 연락해 나를 학교 기숙사에 넣어버렸고, 그제야 정시에 등교하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건 아니었고 당시 나는 첫사랑을 하느라 바빴다. <여기서 잠깐 첫사랑 얘기> 다른 반에 전학 온 남자아이가 화제였다. 하루는 나의 남사친이 본인이 좋아하는 여자 친구도 그 아이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눈물을 흘리길래 대체 어떤 놈인가 한 번 보러 갔는데 나의 소감은 '뭐야 별 거 없잖아?'였다. 그런데 얼마 후 그 별 거 없는 놈이 내 옆을 지나갈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난 그때 정말이지 내 심장이 가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아이가 다른 여자 친구들과 얘기하는 것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르고 눈물이 났으니 이게 무슨 감정인줄도 몰랐던 날들을 보내다 알았다. 내가 쟤를 좋아하는구나! 내 감정을 확실히 알아챈 그날로부터 나는 그 친구를 따라다녔다. 하지만 내가 너무 말라 징그럽다는 멘트와 함께 까였는데(당시 39~41kg) 나는 그 해골 같은 몰골로도 뚝심 있게 그 아이를 따라다녔고 결국 쟁취했다. 나이 들어 회상하니 그저 귀여운 풋사랑에 지나지 않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심각했던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과 함께 <여기서 잠깐 또 상이 이야기> 상이는 착하면서도 엉뚱하게 웃기는 매력이 있는 친구였다. 한참 짝사랑을 하던 시기 상대가 다른 여자 친구와 웃으며 떠드는 걸 보고 상심한 나를 본 상이는 "이번엔 내가 복수해 줄게"하며 교실을 나섰고 이내 웃는 얼굴로 돌아와 얘기하길 "마침 복도에 나갔는데 애들이 그 여자애 팔뚝을 때리고 있는 거야 그렇게 하면 팔뚝살이 빠진다면서 말이야. 그래서 나도 도와줄게 하며 팔뚝을 있는 힘껏 때려주고 왔지 뭐야?" 그래봤자 고양이 솜방망이 같은 세기로 때렸을 게 빤히 보이지만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상이 덕분에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교무실로 따라와"

야자 시간엔 라디오나 음악을 들으며 딴청을 피우기 일쑤였는데 어느 날 재관쌤으로부터 교무실로 호출을 당했다. 그리고 선생님은 내게 신문을 쥐어주며 말씀하셨다. "너 오늘부터 야자 시간에 다른 거 하지 말고 신문 읽어" 그렇게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신 문 두 권을 받아 교실에 올라왔고 읽기 시작했다. 읽으라니까 읽긴 했지만 너무 신문에 얼굴을 파묻고 읽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선생님은 다시 한번 호출을 했다. "폴순아, 최근 네가 읽은 신문들은 같은 편에서만 말하기 때문에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 신문도 읽어봐야 해"하며 반대 성향의 신문을 건네주셨다. 처음으로 읽었던 신문들은 조중동이었으며 당시는 노무현 정권 시절로 대통령을 향한 공격 기사가 매일같이 쏟아지던 날들이었다. 헤드라인부터 사설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을 까기 바빴는데, 정치와 사회에 문외한이더라도 남욕하는 거 보고 듣는 건 재밌는 일 아니겠는가? 무슨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맨날 대통령을 욕하길래 그런가 보다 하고 신문을 읽는 내가 한쪽으로 편향된 시선에 갇힐까 걱정됐던 선생님이 반대 성향의 신문도 함께 읽어보라며 권한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신문을 읽기 시작했다. 이게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런데 정말 딱 두 달 지났을까? 책을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하루는 선생님이 내가 제출한 수행평가 리포트를 들고 모든 반을 돌며 '리포트는 이렇게 쓰는 것'이라고 칭찬을 한 적이 있다. 갑자기 일취월장한 나의 작문 실력에 모든 선생님들이 어리둥절했던 것 같다. 물론 갑자기 칭찬받는 본인 또한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리고 그즈음 대학이 가고 싶어 졌다. 어느 날엔 선생님과 함께 전국 대학 지도를 보다가는 "선생님 저 여기 갈래요"하고 짚은 곳이 스카이의 정치외교학과였는데, 그런 나를 보며 재관쌤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폴순아 네 성적으로는 여기(지방대) 정외과도 가기 힘들단다?" 역시 나를 조련할 줄 아는 재관쌤, 여기도 못 갈 것 같다는 말에 나는 그날부터 그 학교를 목표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중3에 이어 고3이 되어서야 또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나는 원하는 대학의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누구보다 기뻐해준 것 또한 재관쌤이었다.


그 시절 선생님 답지 않게 매 한 번 들지 않으셨지만 조용한 카리스마와 특유의 유머 감각으로 학생들을 통제할 줄 아셨던 우리 재관쌤, 특히 나같이 노답이었던 아이의 잠재력도 캐치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다. 그때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지금의 내 삶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을까. 장담할 수 있는 건 지금보다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었을 거라는 것. 인생을 살며 평생을 기억할만한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만큼 행운인 일도 없을 것이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스승의 날에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을 뵌 후로 더 만난 적은 없지만 내 마음 한편엔 늘 재관쌤이 있다.


에필로그

잊고 있었던 기억이 이 글을 쓰다 떠올랐다. 고1 시절 집이 어려웠다. 학부모 상담에서 할머니가 재관쌤에게 그 사실을 얘기했던 모양, 어느 날 선생님은 나를 조용히 불러 아무도 모르게 '비밀 장학금'을 주셨다. 훌륭한 졸업생 선배가 똑똑한 친구를 지원하고 싶다며 몰래 전달해 달라고 했다는 말과 함께.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재관쌤에게 비밀 장학금을 받았고, 당시 나는 선생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비밀 장학금 같은 건 없는 것이다. 한참 예민한 사춘기 소녀인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훌륭한 선배'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본인의 사비로 지원해 주신 것이 틀림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려 20년 만에 말이다. 선생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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