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공간 만들기-점

점에서 면이 되고

by geog kim

여행은 언제나 뜻처럼 되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예약한 숙소에 벌레가 들끓기도 하고, 맛집이라고 찾아간 식당은 문을 닫는다. 휴가와 주말을 갈아 넣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길 바랐던 이들에게 여행지에서의 변수는 반갑지 않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최악이 있었다. 코로나19가 우한 폐렴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뉴스에 나올 때쯤, 나는 이탈리아 베니스에 있었다.

사실 억지로 짜낸 일정이었다. 1박 2일의 빠듯한 일정동안 계획을 짜고 빠르게 돌아다녔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계획했던 일정이 오후 3시에 끝나버리고 말았다. 개인적인 감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사실 볼 것이 그다지 없더라는 것이 나의 평이었다. 그날은 그렇게 쉬는 날이 되었다. 저녁 식사를 위한 잠깐의 외출을 제외하고는 방에서 체력을 보충하였다.

다음 날이 되고 캐리어를 끌고 역으로 가려던 때 상황은 벌어졌다. 행여나 기차를 놓칠까 구글맵에다 눈을 박고서 역을 찾아가던 중, 강도를 만났다. 지도를 따라 골목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것이 화근이었으리라.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앞주머니에 100유로가량의 현금을 들고 있었기에 원만한 합의(?)로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런데 돈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당황한 상태로 정신없이 기차에 올라타니 기차가 뒤로 가는 것이었다. 결국 어떻게 다시 베니스로 돌아왔으나, 여행 일정은 하루가 밀리게 되었다.

체크아웃한 게스트하우스에 두 시간 만에 다시 체크인을 했더니 말 많은 브라질 아저씨가 말을 걸더라. 서로 서툰 영어로 대화하려니 기가 쭉 빨려 짐을 풀고 다시 방 밖으로 나왔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걸었다. 기념품이나 살까 하면서 시내를 돌아다니고, 점심이나 싸게 해결하려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의 계획 없던 여행은 어느새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질 때 쯤 끝나게 되었다.

여행을 망쳤는가? 오히려 내가 점을 찍고 돌아다닌 도시를 얼마나 다. 외관과 달리 골목 안 주민들의 생활, 관광객과 설비 제한으로 인한 문제, 이민자들에 의한 공간 구분까지 느꼈던 그날의 베니스는 여행 중 최고의 공부이자 관광이었다. 새로운 건 베니스였을까?

반갑지 않게 시작했던 새로운 경험은 뒤의 일정에 여유를 주는 자극이 되었다. 돈이 없는 시기에 간 유럽 여행에 시간 여유는 상당항 사치였다. 사실 방법은 별 것 없었다. 점과 점을 찍어두고 다니던 이동 시간에 여유를 준 것이다. 눈에 띄는 가게에 한 번 들렀다 가기도 하고, 사람들이 사는 동네로 슬쩍 들어가 보기도 했다. 이사한 첫날 집 주변을 둘러보듯, 그렇게 도시를 돌아다녔다. 그렇게 여행이 끝났을 때쯤 확신이 들었다. 관광은 점이 아닌 면으로 해야한다.


공간은 랜드마크 몇 개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점과 점을 이은 것만으로 도시를 봤다고 할 수는 없다. 점 주위에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는 이상 도시를 관광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에펠탑'을 관광하거나 '융프라우'를 관광한 것이다. 서울에 놀러 온 외국인이 롯데타워와 경복궁만 보고 전통이 살아있는 최첨단 도시라고 평하면 '에이 겨우 그거 보고'하는 꼬장스러운 마음이 들 것이다. 우리에게 한국은 면이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더더욱 그렇다.

친구가 내가 사는 동네로 놀러 온다고 하면 어디를 보여줄 것인가? 화려하고 멋진, 깨끗하고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줄 것이다. 보기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사실 그것이 가성비 맞는 관광 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우리는 알고 있다. 누가 소외받고 있으며 누가 공간의 기득권인지, 사람들이 어떻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공간은 어떻게 구분되고 있는지. 이 모습을 알고 보는 우리의 공간은 더더욱 깊다.

우리는 공간이 면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고는 한다. '너네 동네에 뭐 있냐?'라는 질문은 대답하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그런데, 분명히 뭔가 있기는 하다. 나만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남들도 다 알 것 같은 무언가가 있다. 그것이 나의 공간이다. 특별한 무엇이 있기 때문에 공간이 아니다. 공간이 바로 무엇이다.
























작가의 이전글내 공간 만들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