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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발꾼 Dec 14. 2020

체험증폭장치, 맛 하나

파발여정-DMZ 콘텐츠 3. 실향민 밥상, DMZ 내일 밥상 프로젝트

간혹 지방에서 한 학생이 전학을 오면 꼭 쉬는 시간에 몰려가서 이것저것 질문을 해대는 친구들이 있었다. "거기 지하철 있어?" "거기 영화관 있어?"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보면 결국 반쯤 농담이 섞인 이런 질문도 나오곤 한다. "너 바나나 먹어 봤어?" 


어디선가, 탈북자들이 싫어하는 질문 중에 하나가 너 바나나 먹어 봤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생각해보면 뭘 먹어봤고 안 먹어봤고 가 어떤 사람의 수준을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무례한 일이다. 사실 우리도 진짜 평양냉면이 뭔지 잘 모르면서 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질문이 이해가 된다. 비하의 의미를 제거하고 본다면. 내가 가보지 못한 곳,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대의 음식은 항상 궁금하다. 


음식과 식문화는 당연하게도 경제적인 지표 이상의 무수한 데이터를 담고 잇다. 지역민들의 사는 방식, 날씨와 기후, 식생과 토양, 때로는 지역의 관습, 미신, 역사 혹은 개인적 스토리들도 말이다.


파발여정-DMZ의 세 번째 콘텐츠로 추르추르프레스 X 판판스튜디오의 실향민 밥상, DMZ 내일 밥상 프로젝트 소개한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전쟁 피난민과 북한이탈주민들의 이야기와 음식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북한의 음식과 식문화에 대해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전쟁이라는 거대 서사 속 사람들의 스토리를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의미 있게 풀어냈다. 음식 옆에 놓인 종이 위 손글씨로 쓰인 그들의 이름이, 이 음식들은 단지 북한음식이 아닌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음식이라고 소리치는 것 같아 인상적이다.


이라는 요소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 콘텐츠를 통해 당신의 여행에서 만나는 모든 음식에 담긴 이야기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관련 자료 링크를 통해 레시피도 확인할 수 있으니, 따라 해 보는 것도 추천한다. 


추르추르프레스 X 판판스튜디오 (진나래 작가)

홈페이지   jinnarae.com / 인스타그램   @churchurphanphan 

'실향민 공유 밥상' 관련 자료 링크 








<추르추르프레스 X 판판스튜디오의 소개 글>


실향민 공유 밥상

의정부에서 출발해 그보다도 더 북으로 북으로 가다 보면, 민간인 통제구역에 닿는 것일까 싶을 때 즈음에 이르러 '새로운 희망'의 마을, '신망리(新望里)'에 닿는다. 남방한계선에 못 미치면서도 동쪽에 가깝기에 파주 등지의 여느 통일전망대보다도 훨씬 북쪽에 위치한 이 마을은 전쟁으로 허허벌판이 된 땅에 미군이 터를 닦고 자재를 공급해 피난민들과 함께 세운 피난민 정착촌이자, 일종의 소규모 계획도시이다. 


격자형으로 편평하게 잘 닦인 덕분에 피난민 정착촌이라는 설명이 무색하게 마을의 모습은 유독 양지바르고, 경기북부의 많은 마을들이 그렇듯 한때 국군이나 미군에 기대어왔던 경제가 군부대 이전으로 무너지면서 일명 다방촌은 물론 마을 곳곳의 가게들이 비어버린 지 오래이지만 마을은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다. 리서치가 아니라 힐링을 하러 온 것이 아닐까 하는 착각 속에 우리가 머릿속에 그렸던 '피난민 정착촌'은 어느덧 사라지고, 정감 어린 보통의 시골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어느 마을보다도 인심 좋고 유쾌한 어르신들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차마 묻지 못했던 이야기들, 이 마을이 디디고 있는 그 땅에 묻힌 트라우마에 대해 듣게 된 것은 마을의 음식에 대해 이야기할 때였다. 먹을 게 없어 미군이 버린 음식을 끓여먹었다는 일명 '꿀꿀이죽', 언제라도 유사시에 들고 튀어야 하니 집집마다 많이 만들어 놓았다는 미숫가루, 척박한 땅에서 율무나 콩이 그나마 잘 되니 종종 해 먹었다는 되탕(콩비지탕) 등, 이 마을엔 특별한 음식이 없다며 내어놓으신 그 음식 이야기들에는 

그제 꺼 어르신들이 말하기를 꺼려하셨던 그 옛날 가슴속에 묻어버린 이야기들이 버무려져 나왔다. 이에 부랴부랴 어르신들의 음식을 우리-제3세대의 시각에서 새로이 개발해줄 수 있을 참여자를 추가로 섭외하고, 직접 담근 막걸리와 직접 만든 두부, 백태로 만든 호무스와 비스킷 등을 메뉴로 해서 마을의 핫플레이스 실내 게이트볼장에서 '뉴-호프' 막걸리 잔치를 열었다. 


2018년 '경기북부 실향민공유밥상'은 이처럼 평소 꺼내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을 내어놓고, 또 평소 이루어지기 어려웠던 만남의 장을 열기 위해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더 이상 토박이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점점 이주가 보편화된 세상이기에 '실향'의 개념도 매우 포괄적일 수 있지만, 특히 가깝고도 먼 고향, 옆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이북을 고향으로 둔 한국전쟁 피난민과 북한이탈주민들, 이들의 이야기와 음식에 주목해서 공유 밥상을 열었다. 전 세계의 다양한 음식을 서울에서 즐길 수 있다지만 이북 음식이라 했을 때 우리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냉면과 만두, 온반, 아바이순대 정도에 그칠 만큼, 이북 음식, 특히나 현대 이북 음식은 우리에게 낯설다. 옆에 살고 있으면서도 단절과 편견으로 충분히 관심을 두지 못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는 대목이다. 비단 음식만이 아니라 우리는 이북의 문화를 일부 신문기사와 사진들로만 접할 뿐이며, 남북관계의 변화로 관련 전시와 대형 행사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때도 '평화'와 같은 추상어와 '인스타그래머블'한 북한식 미감의 이미지들만이 떠돌아다녔을 뿐 실제 삶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 가려진 땅과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어쩌면 의지가 없는 것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눈에 띄는 기회가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나는 더더욱 '실향민 공유 밥상'이 이미지로 소비되기보단 우리가 몰랐던 음식의 이야기를 담는 동시에 우리가 몰랐던 사람들의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기를 원했다. 그리고 같은 한국사회 안에서 살면서도 서로 다른 시공에 사는 듯한 사회집단들이 교차할 수 있는 만남의 식탁이 될 수 있기를 바랐다. 다행히 함께 한 재단의 직원분도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었기에 규모를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그 마음을 지키며 프로그램을 추진할 수 있었으며, 얼마 안 되는 자리는 되도록 관계자보다는 일반 시민들에게 제공하려 노력하였다.


비슷한 마음으로 비슷한 일을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이 모든 것을 진행하는 일은 물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꽤나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과정 속에서 뜻하지 않은 경험을 하게 되거나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며, 매일을 부대끼며 함께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한 것이 아닌 만큼 부족한 점도 많다. 진행 중에 결코 동일한 집단이라 볼 수 없는 다양한 한국전쟁 피난민과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고 몰랐던 것들을 듣게 되면서 새로운 시각과 질문들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것은 80-90년대생 탈북민들의 삶과 시각, 그리고 고난의 행군에서부터 중국에서의 돈벌이, 탈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과 선택들이 북한 '여성'들의 삶과 서사에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대한 것들이었다. 나는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분들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못했으리란 것을 감히 짐작하며, 깜깜한 바닷속에 내려둔 그런 이야기들을 억지로 끌어내려는 시도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이 뚜껑을 살짝 들어 올려 보여주신 이야기들은 그만큼만으로도 새로운 시선을 부여해 주었는데, 특히 여성의 삶에 관하여서는 임진강 예술단의 백영숙 단장님과 오수연 단원님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북한 여성들이 고난의 행군 때 깨쳤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을, 어찌 상상이나 해볼 수 있었을까? 지난 이야기, 우리 모두는 깔깔 웃으며 이야기했지만 어찌 가족을 먹여 살리고 아들 딸을 살리기 위해 했던 선택들, 죽지 않기 위해 했던 선택들을, 여성이기에 강제되었던 일들, 강제되었던 선택들을, 어찌 다른 이들이 쉽게 말할 수 있을까?


DMZ 내일밥상으로 프로젝트 확장, 지속  

2019년 진행한 'DMZ내일밥상'은 이를 보다 대중화할 수 있을지를 실험한 팝업 식당이다. '실향민 공유밥상'의 메뉴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되 이를 '경기북부' 그리고 'DMZ'의 문화로 해석하여 확장하고자 하였다. 'DMZ'가 더 이상 단순한 군사적 행정적 분계선으로 구분된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무장지대 자체는 물론 인근 군부대가 즐비한 경기북부의 지역들, 그 지역들의 문화, 환경, 농업 등을 아우르는 어떤 특수한 조건의 집합체를 말하는 단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 접근이다. 2019년에는 '실향민 공유밥상'의 내용을 기반으로 하되 경기북부의 다양한 전통주와 차, 한국전쟁 이전 경기도에 속해 있었으며 문화의 중심지였던 개성의 디저트, 파주 출신으로 조선의 백과전서 임원경제지를 집대성한 풍석 서유구의 요리책을 참고한 찬류 등을 포함하여 메뉴를 구성하고 이를 반상식과 케이터링 식으로 개발하였다. 그리고 기회가 닿는다면 올해에는, 미군부대를 중심으로 생겨난 음식문화와 이야기들 역시 'DMZ내일밥상'에 포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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