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이웃 이탈리안

M

by pq

※ 글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상당 내용은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너는 진짜라고 말해줘. 여기 가입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가짜가 정말 많은 것 같아."


이탈리아 남성 M. 데이팅앱에서 사기를 많이 당한 것 같았다.


데이팅앱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다른 사람의 사진을 도용해 쓰는 가짜 아이디들도 많다. 가짜 아이디와 연결이 되면 여러 수법으로 상대방에게 돈을 뜯어낸다. 만나자고 하면 가짜 아이디는 오히려 상대방에게 진짜임을 먼저 확인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결재를 해야만 얼굴인식이 가능한 사이트를 알려주는 수법으로 사기를 치는 것이다. 물론 얼굴인식 사이트도 모두 가짜다.


다행히 나는 데이팅앱에서 사기를 당하거나 위험한 상황에 처한 일은 없다.

M은 가짜 얼굴인식 사이트에서 수백 달러를 썼다고 했다.


"나는 이보다 더 진짜일 수가 없어. 원한다면 영상통화하자."


바로 영상통화를 해주겠다는 말에 M은 안심하는 듯했다.


"와! 지금까지 나한테 그렇게 말한 사람은 없었어."


이탈리아인이지만 호주에 거주하며 사업을 하고 있는 M은 일 때문에 싱가포르, 홍콩, 일본, 한국 등을 자주 드나든다고 했다. 마침 이번에 한국에 갈 일이 있는데, 그때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우리는 월요일 저녁 6시쯤 압구정에서 만나기로 했다.


M의 키는 188cm, 몸은 늘씬하다. 청바지에 파란 폴라티,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시크한 분위기를 풍겼다. M은 나이를 밝히지 않았다. 나도 굳이 묻지 않았다. 은발의 머리가 나이가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지만 감각만큼은 젊었다. M의 몸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우리는 더위를 피해 근처 스페인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하몽 멜론 등 다양하게 주문을 하고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M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M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9년 사귄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헤어졌다. M에게는 13살 난 아들이 있다. 현재 엄마와 이탈리아에서 생활하고 있다. 호주 시드니에 살며 이탈리아 주얼리 유통 사업을 하고 있다. 꽤 돈도 벌었고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듯했다.


나 또한 나의 과거와 이야기를 나눴다. M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턱을 괴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아름답고, 똑똑해. 재주도 많고 젊지. 앞으로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무한가지야. 살다 보면 피할 수 없는 고난이 닥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인생을 끌고 나가는 고삐는 네가 쥐고 있어."


M의 말속에서 깊음과 지혜가 느껴졌다. 위안도 됐다.

M은 자신의 꿈을 밝히기도 했다.


"바닷가 근처에서 향긋한 과일을 팔면서 남은 여생을 보내는 것이 나의 꿈이야. 너의 꿈은 뭐니?"


잠시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나도 바닷가 근처에서 나만의 공방을 갖는 게 꿈이야. 거기서 그림도 그리고 예쁜 것들도 만들고, 고양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가끔씩 스쿠버다이빙을 하러 바다에 나가는 거지."


M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잘 됐네! 내 과일가게 옆에 너의 공방을 차려서 우리 서로 이웃이 되는 거야!"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M은 지하철역까지 함께 걸어갔다. M은 한국에 며칠 더 있다가 싱가포르로 갈 예정이었다.


M이 말했다.


"9월에 일주일 정도 한국에 오니까 그때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


"그래. 그때 꼭 다시 보자."


우리는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노란색을 증오한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