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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속의 파일럿
B
by
pq
Aug 23. 2023
※ 글에 나오는 등장인물과 상당 내용은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각색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백곰의 몸무게가 얼마라고 생각해?"
"글쎄.. 1톤은 되지 않을까?"
데이팅앱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한 시간 동안 '스피드 데이트'를 진행한다.
'스피드 데이트'가 시작되면 마구잡이로 연결된 상대와 3분 동안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다만 그 상대의 사진, 직업 등 프로필은 공개되지 않는다. 순전히 3분의 대화만으로 상대가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판단해야 한다.
B와 연결됐을 때 B의 첫 질문은 백곰의 몸무게였다. 시간이 흐르는 걸 의식한 B는 다음 대화로 넘어갔다.
"B라고 해. 만나서 반가워. 주말 잘 보냈니?"
"주말에 머리랑 손발톱 했어."
"예쁘게 됐어? 헐! 시간이 다 돼버렸네!"
3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상대방과 대화를 이어가겠습니까?'
3분이 지나면 데이팅앱이 묻는다.
만약 둘 다
'OK
'
하면
둘은 이어진다.
그러면 서로의 사진, 직업 등, 프로필을 볼 수 있다. 만약 한 명이라도 'NO
'
하면 둘은 연결이
안 된다.
나는 B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어졌다. 'OK'를 눌렀다.
'상대방과 연결됐습니다.'
"안녕"
"안녕~~~~~~~!!!"
B는 내가 'OK'를 누른 것에 매우 기뻐하는 듯했다. 잠시 내 프로필을 보고 돌아온 B는 문자 폭탄을 날리기 시작했다.
"박사라고? 대박!! 지성에 미모까지?"
"아이는 언제 낳고 싶어?"
"우리 당장 2명 낳자!"
"모델이야?"
"기자였어? 진짜 멋지다! 영상 보여줄 수 있어?"
"넌 10점 만점에 10점이네!"
"섹시해!"
"우아해!"
B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왔다.
경제학을 전공한 뒤 관련 업종에서 8년 동안
일하다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미군 육군에 입대했고 파일럿이 되었다.
한국에는 이번이 두 번째 파견이다.
"넌 어떻게 몸매가 그렇게 좋아?"
"서양몸매와 동양얼굴이 합쳐진 완벽한 세트야."
"너 진짜로 존재하는 거 맞지?"
"넌 여신이야."
내 외모에 대한 칭찬 세례를 퍼붓던 B.
'띠리리리~ 띠리리리~'
갑자기 B에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너 진짜 존재하는구나! 하하!"
영상통화를 받자 화면 속 B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크게 웃었다.
B는 야구모자를 거꾸로 쓰고 있었다.
모자 사이로 금발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B는 하늘처럼 파란 눈을 가지고 있었다. 약간의 장난기 있는 얼굴로 연신 '오 마이 갓~'을 외쳐댔다.
우리는 10분 동안 영상통화를 마치고 다시 문자로 대화를
이어갔다.
"오. 마이. 여신. 너는 진짜잖아. 정말 아름답잖아! 믿을 수가 없어!
"
"너 나랑 연결된 이후로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거 알고 있어?
"
나는 B와 영양가 있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널 원해.
"
B의 직진공세는 멈추지
않았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B에게 또 영상통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와우, 와우, 이번엔 안 받을 줄 알았는데."
"용건이 뭔데?"
"너무 예뻐서 자꾸 보고 싶잖아."
그렇게 영상통화를 15분 하고 끝난 지 10분 뒤.
"나 또 영상통화하고 싶어."
나는 자야 한다고 거절했다.
"너는 나한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어. 진심으로 널 보고 싶어서 심장이 막 뛰고 죽을 것 같아. 심각해."
"나 이제 정말 잘게. B도 잘 자!"
"네가 벌써 보고 싶어."
B는 그 문자를 마지막으로 일주일 동안 연락이 없었다.
애정공세를 폭탄처럼 퍼붓더니 갑자기 뚝! 끊겨버린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태연하게 문자를 보내온 B.
"안녕! 뭐 해? 영상통화할까?"
황당한 나는 B에게 답장을 보냈다.
"오랜만이네. 연락이 없길래 나는 네가 나한테 관심이 없어진 줄 알았지. 이렇게 연락이 오니 당황스러운걸?"
B는 방어적이었다.
"너도 나한테 연락 안 했잖아."
유치했다.
"B, 우리가 나눈 문자를 봐봐. 나는 너한테 아침인사, 저녁인사, 며칠간 꼬박했어. 문자를 안 한건 너야. 답이 없으니까 나도 당연히 그다음부터는
연락을 안 했지."
B는 이번에 핑계를 댔다.
"내가 너한테 관심이 없을 리가! 말했잖아. 나는 밤 비행을 하기 때문에 스케줄이 정말 꼬여있다고. 밤에 비행 훈련하면 아침에 밥 먹고 하루종일 잔다고. 그래서 연락을 못했던 거야."
"B, 연락은 하고자 하면 어떻게든 해."
"알았어. 난 너를 잃고 싶지 않아."
그 후 B는 정말 매일 꼬박꼬박 문자를 보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보통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영상통화를 하면 만나자고 하는데, B는 만남을 차일피일 미루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네가 너무 바빠서 만나기 힘들다'라며 내 핑계를 댔다.
내가 시간이 되는 날에는 비행이 있어서 안된다고 했다. 비행이 없는 날에는 피곤해서 안된다고 했다. 결국 나는 B에게 물었다.
"B, 솔직하게 말해봐. 너 나 만나는 걸 피하는 이유가 뭐야? 숨기는 거 있지?"
머뭇거리던 B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나 얼마 전에 머리를 심었어. 그런데 심은 머리들이 아직 다 안 자라서 보여주기가 많이 민망해."
그러고 보니 영상통화 할 때마다 B는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B에게 상관없다고,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B의
입장이 이해가 됐다. 그래서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면 만남을 미루자고, 이해한다고 했다.
"아니야. 이번 금요일에 저녁 먹자."
그런데 오히려 B가 갑자기 만나자고 했다. 모자 쓰면 된다며 만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의 비밀(?)을 밝히고 나니 오히려 자신이 생긴 걸까?
B와 나는 금요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
금요일.
출근길에 B에게서 문자가 왔다.
"부대에서 아침에 실수를 해서 엄청 혼났어."
나는 B를 위로하는 문자를 보냈다.
"기분이 정말 안 좋겠구나. 저녁에 맛있는 거 먹으면서 기분이 풀렸으면 좋겠네."
몇 시간 후 B에게서 답장이 왔다.
"오늘 저녁에 만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아."
B의 문자는 마치 예견된 것 마냥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B를 영상 속에 고이 남겨두기로 했다.
B에게 마지막 문자를 보냈다.
"이유가 어떻든 너는 약속을 어겼어. 앞으로 나에게 연락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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