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사람들

07월 17일 월요일 오전 07시

by pq

'삼천리 강산~ 내 마음~'


기다란 우산을 휘두르며 좁은 지하철 통로를 휘졌고 다니는 한 남성.


그의 휴대폰에서는 웅장한 정체 모를 노래가 무한 반복으로 흘러나온다. 군가 같기도, 노동요 같기도 한데, 처음 들어보는 노래라 잘 모르겠다.


남성은 이 음악에 꽂혔는지 음량을 크게 틀어놓아 지하철 승객들 모두 들을 수 있도록 해놓고 춤까지 춘다. 혼자 중얼중얼거리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기 어렵다.


승객들은 이 남성의 존재가 매우 불편하지만, 마치 남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남성과 눈을 마주치지도, 남성의 행동에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금방 지하철에 올라타 상황을 모르고 남성 옆에 서있던 승객들도, 이내 다른 곳으로 이동해 버린다. 그야말로 기피 대상이다.


지하철에서는 아픈 사람들을 자주 맞이하게 된다.


예전 대학원 다니던 시절.

외국인 친구와 2호선을 탄 적이 있다. 친구와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다가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디선가 나타난 아저씨가 갑자기 두 손으로 내 두 발목을 잡고 중얼거리며 마구 흔드는 것이 아닌가.

그땐 당황해서 어떻게 대처했는지도 모르겠다. 바로 다음 역에서 친구와 내렸던 것 같다.


한 번은 서울역에서 당시 사귀던 외국인 남자친구와 지하철을 타려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어떤 아저씨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마구 소리를 질렀다.


"네 나라로 돌아가! 이 망할 놈의 새끼야!"


아저씨는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들고 있던 가방까지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당시 남자친구는 영문도 모른 채 '뭐라고 하는 거냐'라고 물었지만, 나는 '잘 못 알아듣겠다'라고 대충 둘러댄 뒤 "아픈 사람인가 봐"라고 말하고 말았다.


가끔씩 이렇게 머리가,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사람도 있을 테지만, 살아가면서 어떤 끔찍한 일을 겪고, 그 트라우마로 뇌와 마음이 더 이상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상태인 것이라면,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이 따랐을까?


어느새 지하철 안은 출근길 인파로 가득 찼고, 용맹한 음악을 틀어대던 남성은 인파 속 어딘가에 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저 멜로디만 들려올 뿐이다.


'삼천리 강산~ 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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