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의 공간>(김현진, 자음과모음, 2017년)
황망하다. 너무도 때 이른 죽음, 건축가 김현진 선생님 부고를 뒤늦게 접했다. 지난 달 중순에 돌아가셨다. 이를 어쩔꼬. 안따깝고 애닳다.
2022년 12월 1일, 무작정 뵙고 싶다고 전화를 드렸다. 대구 왔으니 계신 곳으로 가서 뵙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문자를 먼저 드렸고 전화 통화도 했다. 만나기로 한 날, 떨려서 약속 장소 근처에 1시간이나 일찍 가서 기다렸다. 까페에서 차분하게 있을 수 없었다. 그 추운데 약속 장소 근처를 빙빙 돌았다. 추워서 떤건지 설레서 떤건지 모르겠다. 약속 시간 5분전 도착했다고 전화를 드렸다. 3층에 있다고. 실은 1시간 전에 왔으면서.
선생님은 2층에 있다고 내려 오라고 했다. 2층으로 내려가서 한바퀴 돌고 전화를 다시 드렸다. 선생님도 2층에 있다는데 마주칠 수 없었다. 아뿔사, 우리는 동시간대 다른 공간에 있었다. 통화를 할 때 선생님은 ‘문학관’에 있으니 그리로 오라고 했다. 나는 대구 중구 향촌 문화관에 있는 <대구 문학관>으로 갔다. 바보같이. 그 시간에 선생님은 수성구 <정호승 문학관>에 있었다. 선생님이 지은 건물이다. 그 문학관도 알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 서로 웃음이 터졌다. 이내 서로 미안하다고 이를 어쩌냐고 당황하면서 웃었다. 선생님은 문자로도 말로도 정확히 알려주지 못해 미안해했고, 나는 제대로 다시 묻거나 가기 전에 약속 장소를 다시 한번 확인하지 못하고 지례 넘겨 짚었다고 미안해했다. 선생님 여유 시간은 1-2시간 정도 나도 그 정도. 퇴근 시간대라 택시를 타도 오가는 시간 탓에 맘 편히 얘기할 상황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만남은 그렇게 무산됐다.
2017년 6월 5일, 선생이 쓴 <진심의 공간>을 읽고 페북에 글을 썼다. 6월 8일, 오후 1:22에 선생님에게 페북 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 동안 팔로잉하면서 글만 읽다가 친구 신청합니다. 벌써 사 두었던 <진심의 공간>을 이제야 읽습니다. 두 어장 읽고 페북 제 타임라인에 남긴 글입니다.” 쓴 글을 찍어 같이 보냈다. 조마조마 기다리고 있는데 이내 답이 왔다. “반가워요~^^ 잘 읽어주셔서 고맙고.” 성덕이 되는 순간. 책 읽는 내내 3편의 글을 페북에 더 썼다.
2018년 10월 30일, 헬렌 비네가 서울에 왔다. 종묘를 찍으러 왔다. 몇 년 전 헬렌 비네가 병산 서원을 찍은 후 였다. 그날 종로 <낙원 상가>에 있었는데 당일 <아트선재센터>에서 강연 있다는 걸 우연히 알았다. 김현진 선생이 호스트 역할이었다. 사무실 코 앞이라 곧바로 달려 갔다. 1시간 남짓 그간 사진 작업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을 받았다. 헬렌 비네 강연도 좋았지만 김현진 선생을 더 뵙고 싶었다. 애석하게도 사무실에 둔 줄 알았던 책이 없었다. 아쉬웠다.
그날 밤인가 다음 날 새벽인가 페북에 강연 갔다온 글을 남겼다. 먼 발치에서 보고 그냥 왔다는 글이었다. 이렇게 적은 부분이 있었다. “헬렌 비네가 찍은 병산 서원 만대루는 건조했다. 부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질문을 하고 싶었다. 선생에게 공간은 어떤 의미인지, 반대로 공간을 찍을 때 ‘지향’하는 것은 무엇이고, ‘지양’하는 것은 무엇인지, 일련의 결과물은 의도가 깔린 작업인지, 직관에 가까운 작업인지...”
2018년 10월 31일 오후 12:38, 페북 글을 보고 메신저로 김현진 선생이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길지만 전문을 옮긴다.
“안녕하세요. 어제 강연에 오셨는지 몰랐습니다. 당연히 몰랐죠^^ 저는 헬렌의 고객이나 후원자라기 보다는, 친구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그의 작업을 좋아하고, 그 보다 더 그 사람을 좋아합니다.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도움을 주면서 자신의 재능을 가장 잘 발휘하길 바라는 마음이 큽니다. 오늘 아침, 공항으로 그녀와 어시스턴트 조하오를 배웅하고 국토부 회의를 세종시에서 기다리며 페북을 보고 어제 강연 자리에 오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그 일들이 결국 자신에게 좋다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에 마주치게 되면 아는 척 꼭 해주세요. 깊이 감사 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김현진 드림.”
성덕이 되는 순간, 떨리는 가슴을 부여 잡고 시크하게 짧은 답을 남겼다. 2019년 1월 11일 오후 9:25, 김현진 선생이 당분간 페북 담벼락을 닫는다는 글을 올렸다. 글 읽고 바로 무탈하시길 비는 문자를 페북 메신저로 보냈다. 몇 분후 답장으로 짧은 한마디, “연락하세요^^”라며 바로 폰 번호를 주더라. 사느라 바빠서, 대구에 진득하게 올 일이 없어서 2022년 12월이 되어서야 겨우 전화를 드렸다.
결국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 통화하며 들었던 밝은 목소리, 웃음 섞인 목소리가 쟁쟁거린다.
“선생님, 친구 헬렌 비네는 장례식에 왔나요? 알았다면 저도 갔을텐데요. 대구 가면 함께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작년인가요 건축과 연결해 메타버스 관련 회사 차리신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부디 진심의 공간에서 누구보다도 편히 쉬세요!“
덧) <진심의 공간> 저자 소개, 단아한 소개글이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건축가로 스스로의 직업을 인식한 것은, 졸업 후 거의 20년이 다 되어서다. 그동안의 시간들은 한국 사회의 현실에 부딪히며 절망과 고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교육과 독서를 통해 그 시간을 버틸 수 있었고, 이제 어지러운 마음은 서서히 정제되어 맑아졌다. 파리 유학 기간 5년을 제외하고는 태어난 곳, 대구를 떠나지 않았고, 지혜로운 제자 두 명과 함께 작은 작업실을 꾸려가고 있다. 한 해에 한두 개 정도의 건물 설계와 연구 작업만 하면서 지역의 건축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안정과 자유 중에서는 깊은 자유를 원했고, 지위와 존경 중에서는 진정한 존경을 원했고, 사무소 이름보다는 지금 같이 있는 사람을 귀하게 여겨 스스로 선택한 삶의 방식이다. 건축도 이제 시작이고, 글도 이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