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사유를 돕는 책
초등학교(내가 다닐 때는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교에서 체벌로 맞았다. 잘못은 곧 육체적인 벌(체벌)이었지 대화나 소통이 아니었다. 진짜 잘못인지 모를 일도 많았고 내 잘못 아니어도 맞았으며, 모두 다 같이 맞았다. 모질게 때렸고 무지막지하게 맞았다. 선생은 때리는 게 허락된 사람이었고 학교와 교실은 폭력이 용납되는 장소였다.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교실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교무실에서 맞았다. 도구는 몽둥이•발•손•빗자루•밀대자루•쟁반•칠판지우개 잡히는대로 때렸고 종류도 다양했다. 참 많이도 맞았다. 당연하다 여겼고 당연한 줄 알았다, 반항하거나 문제 제기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군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군대 가니 결국 학교는 군대 축소판이라는 걸 알았다. 모질게 맞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수시로 맞았다. 몸은 내 것이 아니었다. 병장이 되고나니까 때리지 않는 걸 선택하는 것 자체가 수난이었다.
청소년 시절 다닌 교회는, 음악을 포함 대중 문화는 죄다 사탄이 선택했다고 가르쳤다. 영화 비디오 테잎과 대중가요•팝송 테이프를 신 앞에서 불태우고 그게 죄라고 머리를 조아리고 부끄러워했으며 울었다. 질문할 수 없었고 진리는 일방적으로 선포되었다. 질문은 용납되지 않았고 대화는 역시 없었다. 혼전순결서약을 했다. 몸에 대해 무지했고 몸을 부끄러워했다. 혐오나 죄책감은 몸을 대하는 주된 정서였다. 몸에서 파생된 모든 것은 암묵적으로 피하거나 감추거야 할 것, 몸은 금기였다. 갇힌 몸에서 건강한 정서와 예리한 지성이 솟아오를 수 없(는게 당연하)다. 몸이 갇히니 마음은 쫄아들고 머리는 비대해졌다. 뒤늦은 몸에 대한 탐구는 그렇게 시작됐다.
박준상 선생이 쓴 <떨림과 열림 : 몸•음악•언어에 대한 시론>(2015)은 색다른 입구였다. 다시 전체적인 그림과 이후 독서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자크 르 코프의 어린 시절과 몸에 대한 탐구 과정은 내 여정과 흡사했다. <중세 몸의 역사>는 어린 시절 들은 몸에 대한 가르침이 어떤 기원을 가졌는지 간략히 정리할 수 있었다. <몸의 역사2>까지 출간됐다. 전체 3권 짜리라 들었는데 2권까지 번역•출간됐다. 3권은 아직이다. 몸에 대한 미시사, 필요할 때 시대별 몸을 대하는 관점•몸에 대한 태도를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부담 갖고 완독을 목적하기보다 사전처럼 활용하면 딱이다. 도판 자료도 흘륭하고 내용은 풍부하다.
음악은 디오니소스적 상태를 점진적으로 특수화시키고
음악 자체와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몸'의 능력들을 희생시켜 이르게 된 곳이다.
(니체)
<몸의 역사> 시리즈 공동 집필자인 파리 5대학 사회역사학 교수인 조르주 비가렐로가 쓴 <깨끗함과 더러움>은 몸의 문제를 청결이라는 관점으로 다룬다. 청결의 개념 역시 종교적 감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몸으로 역사를 읽다>는 박준상 선생의 책과 마주울린다. 출판사 푸른역사는 듬직하다. 철학자•사회학자들의 원전으로 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다양한 연구자들이 다양한 주제로 몸에 대한 계보학적 정리를 애쓴다, 흥미롭게 읽었다.
한스 페터 뒤르가 쓴 <음란과 폭력>은 인간의 성이 가진 '폭력성'에 주목한다. 한길사가 출간한 한스 페터 뒤르 3부작은 몸에 대한 방대한 문화사다. <코르푸스>는 장 뤽 낭시가 쓴 몸에 대한 철학적 사유다. 이 책은 여전히 어렵다. 몸에 대한 한 편의 긴 시, 글쓰기 구조•형식•내용 자체가 몸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뒷받침한다. 읽고 이해하고 기억하는 속도보다 잊어버리는 속도가 더 빠르다.
어떤 사유와 담론은 인간의 '몸'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다. 몸에 대한 이해의 전제와 토대를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무한한 자유를 외치든 강력한 통제를 요구하든 몸에 대한 입장이 엇비슷할 수 있다. 재미있는 일이다. 출구가 보이지 않고 의견 분분한 이 바닥 동성애 논쟁도 몸을 어떻게 사유하고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성애와 인류애(휴머니즘)로 당연히 여기는 가족(이기)주의에 대해서도 다양하고 정당한 질문과 문제 제기가 필요하다. 금기는 자주 권력이 감춘 치부(일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