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뮈를 추억하며>(민음사, 1997)
생각이 태어날 때에는
불가피하게 부끄러움이 따라 붙는다
카뮈는, 1957년 10월 16일 자신이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흔 넷 젊은 나이였다. 그는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세계적인 문호가 되었다. 하지만, 1960년 1월 4일 친구였던 미셀 갈리마르가 모는 자동차를 함께 타고 파리로 가던 중 교통사고로 죽었다. 카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카뮈를 조명하는 평전과 연구 자료들이 쏟아졌다. 장 그르니에는 <카뮈를 추억하며> 서문에 이렇게 썼다.
“그의 삶과 작품은 이미 세세한 부분까지 연구되었으며 지금도 연구되고 있다.”
장 그르니에와 카뮈의 나이 차이는 열 다섯살 차이, 카뮈가 열입곱이었던 때부터 28년 동안 두 사람이 이어온 우정, 카뮈가 죽고 8년이 지나서야 장 그르니에는 <카뮈를 추억하며>를 ‘겨우’ 출간한다.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서한집에 따르면 장 그르니에와 카뮈는 햇수로 28년 동안 편지와 엽서를 주고 받았다. 1981년 출간한 서한집과 장 그르니에가 쓴 <카뮈를 추억하며>를 겹쳐 읽으면, 사적인 대화 속 카뮈와 그르니에를 새삼스레 엿볼 수 있다. 마치 남의 일기장을 몰래 읽는 것처럼. 장 그르니에가 그리고 기리는 카뮈는 읽을 수 있지만, 카뮈가 그리는 장 그르니에는 인타깝게도 읽을 수 없다. 장 그르니에가 쓴 <섬>에 카뮈가 (어느 정도 일가를 이루고 스승 혹은 친구를 위해) 쓴 서문은 그래서 더 애틋하다. 장 그르니에는 카뮈에게서 받은 모든 편지와 엽서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카뮈는 어느 날 편지와 엽서를 다 태운다.
“나는 어느 것 하나 빼놓지 않고 다 태웠소 —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이들 — 나의 자랑이었던 이들 — 내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이들 — 그르니에, 외르공, 클로드, 잔, 마르그리트, 크리스티안, 모든 남자들, 모든 여자들. 모든 것이 다 타버렸소. 내 가슴 속에서 과거의 5년이 비워져 버렸소.”
카뮈가 모든 것을 태우며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알 수는 없다. 서한집에도 그 시기 5년 동안은 장 그르니에의 답장만 실려 있는데 미뤄 상상해 읽을 수 밖에 없다. 어쩌면 카뮈는 죽어서도 장 그르니에에게 빚 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한집 끝에 달린 파트릭 코르노가 쓴 해설은, 카뮈가 <섬> 서문에 쓴 말로 이렇게 맺는다.
“끝에 가서 제자가 스승을 떠나 자신의 독자적이고 다른 세계를 완성하게 될 때–실제에 있어서 제자는 언제나 자신이 모든 것을 얻어 가지기만 할 뿐 그 어느 것 하나 보답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던 그 시절에 대하여 변함없는 향수를 지니게 될 것이면서도–스승은 흐뭇해한다.”
어떤 만남과 관계, 어떤 우정은 애뜻,하고 아련,하다.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