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은정 평론가의 안녕을 빈다
브런치 스토리에 올렸던 글
장은정 평론가가 내 브런치 글에 댓글을 달았다. 깜짝 놀랐고 반가웠다. 여전히 활동 중이라는 말에 안도했다. 문학 평론의 장, 바닥을 떠나 혹은 너머, 다른 매체에서 비평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에 반갑고 고맙다. 최근 <정지돈 사태>가 공론화 되었다. 나는 한겨레 신문을 통해 알았다.
한겨레 기사 : 정지돈 사태 (1)
한겨레 기사 ; 정지돈 사태 (2)
나는 경험해서 안다. 한 사람이 '개새끼 였구나'를 드러내는 사건이 어느 날 순식간에 일어난다.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개새끼가 되는 순간은 단순하고 간단하다. 잃을 것이 생긴, 한 줌의 '권력'을 어쩌다 소유하게 된 이들(그 권력은 대개 자신의 것이 아니라 독자라는 이름의 사람들이 빌려 준 사랑과 지지의 축적이다)이, 자신이 한 실수를 정직하고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 앞에서, 애초에 쥐뿔도 없었던 인간인데, 어느새 본전 생각을 하면서 꼼수를 부리고 머뭇거리는 순간 '개새끼 사태'는 발생한다. 사고가 사건이 되고 사태가 되면서 겉 잡을 수 없이 커지는데 대개는 돌이킬 수 없다.
'문제 제기를 한 자'의 정신적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나 역시 죽는 줄 알았다. 자살하는 이들의 심정을 눈꼽만큼 헤아릴 수 있었다,라는 말로 그 더러운 기분, 무너져 내린 가슴, 겉잡을 수 없는 분노, 엄청난 감정의 파도... 이후 피폐해지는 몸은 덤이더라.
한 줌의 권력은 지저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곁에는 뻔하고 단순한 사태를 두둔하며 훈수를 두는, 역시 한 줌의 권력을 가진 제 3자가 등장해 헛소리를 해대면서 사태는 꼬이고 미궁에 빠지며 본질은 안드로메다를 향한다. 대개 이런 식의 뻔한 결말, 재미도 없고 재수도 없다. 이 사태에 하필(?) 장은정 평론가 참전했다. 일방적으로 한 쪽 편을 들기보다 더 큰 이야기를 만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 보자는 취지로 그간의 논쟁에 대해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나름의 중간 평가를 자신의 언어로 단단하지만 담백하게, 꼬치꼬치 따지면서도 세심함과 사려깊음을 잃지 않은 짧은 글을 지어 올렸다.
장은정 평론가의 글
어떤 좋은 글은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 짧아서 아쉬운, 하지만 선명하게 새긴, 문제 제기는 계속 될 것이라는 (1)에 담긴 장은정의 진심은, 존재를 통과한 오롯한 자신의 언어라서 울림이 크다. 한겨레 기사를 읽으며 '결국 개새끼였구나'라고 또 하나의 개새끼의 등장을 늘 그렇듯 심드렁하게 넘겼는데, 장은정의 글 탓에 간만에 글쓰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한 때 정지돈의 글과 등장에 주목했고 글을 읽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기 복제를 해대는, 젠체하는, 키치와 아방가르드가 구호가 되는 순간처럼, 뭔가 꺼름직함에 정지돈에게서 멀어지고 떨어졌다. 몇 년의 시간이 흘러 결국 일이 터졌다. 이 놈의 촉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
내가 몸 담았던 조직에서 나름의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고, 유사한 사태가, 가치와 명분으로 똘똘 뭉친, 나름의 지식인들의 놀이터에서, 지랄맞은 일들이 엇비슷하게 솟아 올랐다 별다른 진전없이 사그라 드는 걸 수십번, 수백번 경험하고 나니 '정지돈 사태'의 과정과 결국을 모니터링할 맘은 쥐뿔도 없다만, 장은정 평론가의 참전이, 평론가가 원하는 새로운 국면, 혹은 해결책, 혹은 공론화, 혹은 이전과는 다른 더 큰 이야기를 짓게 되는 계기가 제발 되길 빈다. 장은정 평론가가 그 과정에서 다치지 않기를 제발 두 손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