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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Jun 16. 2021

윤경희,라는 작가

<분더카머>(문학과지성사, 2021)



윤경희 책이 이.제.야. 나왔다. 참 오래 기다렸다. 가끔 궁금할 때마다 <알라딘>에 들어가서 이름을 넣어보곤 했다. 빈 페이지가 나타날 때마다 언제쯤 나올까 돌아서곤 했었다. 오랜 만에 <알라딘>에 들어가서 새로나온 책을 둘러 보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엇, 윤경희다. 바로 주문했다. 오늘 아침(6/12)에야 책과 만났다. 다시 만나기까지 10년쯤 걸린 듯 하다.



아마 윤경희가 파리 8대학에서 유학할 무렵이지 싶다. 문지 웹진에 올린 윤경희 글을 출력해 돌려 보며 감탄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글은, 빵집에 대한 얘기, 빵에 대한 얘기다. 아침을 못 챙겨 먹고 수업 시간에 맞춰 학교 갔다가 잠시 쉬는 시간 나와서 빵 먹으러 갔던 이야기, 빵과 빵집에 대한 이야기, 그 길에 대한 이야기. 기억을 돌려보면 윤경희 글은 술술 읽히면서도 단단한 무언가가 느껴지는 글이었다. 있어 보이는 글, 잘 쓴 글, 그 당시는 그런 글을 동경했었다.





"...그다지 길지 않은 거리를 거의 끄트머리까지 걸어가서야 도달한 빵집은 아주 작았고, 정말이지 작았고, 테이블도 없이, 짝이 안 맞는 간이의자 두 개만 있었고... 마음에 쏙 드는 분위기였다. 신뢰감이 우러나는 검소하고 가정적인 장소와 수수하고 다부진 그곳의 주인들... 그곳의 빵은 일단 값이 너무나 쌌다. 파리 물가의 절반 정도밖에... 할머니에게 동전을 건넨 다음 거리로 나와 종이봉투에서 빵을 꺼내 한입 무는 순간. 나는 아름다운 폭군의 노예가 되고 싶다... 그날 이후 베를린을 떠날 때까지 나는 거의 매일 그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114, 115쪽)


윤경희의 글은 자세하고 믿음직스러웠다



책을 받아 들고 그 부분을 가장 먼저 찾아 읽었다. 새록새록 떠 오르는 그때 기억, 느낌은 내가 기억하고 있던대로다. 하지만 장소는 파리가 아니라 동베를린 어느 거리였다. 수업 시간은 맞았다. 다시 읽으니 글에 대한 느낌이나 글을 대하는 내 태도는 그때와 많이 달라졌지만 설렘은 그대로다.





"한낮의 베를린 전철, 금발과 홍안의 아이가 있어, 자꾸만 내 쪽으로 함빡 웃다가 엄마 품에 까르륵 얼굴을 묻었다가 또 쳐다보며 웃는가 싶더니, 저 애 참 예쁘다, 근데 나한테 왜 저러는 걸까, 기어코 엄마 무릎에서 기어 나와, 아이와 어른, 남자와 여자, 노란 곱슬 머리와 검은 생머리, 이렇게 자기와 여러모로 다른 내게서 용케도 단 하나의 공통점을 알아보고는,  다른 승객들은 다내버려두고 내게 점점 가까이, 이 소중한 것을 보여줄까 말까, 아니 미리 다 보여줄까 숨겼다 깜짝 놀라게 할까 망설이는 듯, 뒤뚱뒤뚱, 내 앞에 다 이를 때까지도 계속 등 뒤로 가렸다 가슴에 앉았다 되풀이하며, 사실 너무 커서 제대로 숨겨지지도 않던 빛나는 넝마를 마침내 내게 건넸을 때, 그림에서만 보았던 환하고도 환한 푸토putto의 웃음과 함께, 말도 못하면서, 마치 너니까 특별히 허락해준다는 양, 너도 나처럼 말 못하는 거 알아, 말 못하는 사람끼리 같이 놀자, 초대의 신호를 보냈을 때, 아, 그랬구나, 내가 감히 이 귀한 선물을 받아도 되겠니, 말을 통하지 않고도 찬연한 사랑의 한때, 그 순간의 말하기 힘든, 언어의 바깥에서 벅차게 샘솟는 눈물과 고동치는 심장을, 너도 느끼기를 바랐다.(117,118쪽)


길다랗게 하나로 이어진 문장, 새로운 기억이  올랐다. 윤경희의 글을 좋아했던 이유, 윤경희의 글은 '자세하고 믿음직스러운 '이었다. 윤경희가  글을 묶은 책이 이제야 ... 며칠, 아니 한달쯤   읽으며 즐거운  보낼  하다. 아끼면서 야금야금 읽어야지. 오래 기다린 책이, 윤경희가 드디어 나왔다. 윤경희가   자주 글을 쓰면 좋겠다. 마르지 않도록, 닳지 않도록 그만큼만  자주 글을 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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