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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Jun 15. 2021

정찬,이라는 소설가

소설을 쓴다는 것, 이야기를 짓는 끔찍함에 대해...


©부산일보


정찬, 소설을 다시 읽는다. 요즘(?) 소설도 놓치지 않고 읽는 편이다. '책은 읽는  아니라 사는 것이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렇게 사둔  중에서 읽는거다'라고 말하면서 돌아 다닌다. 요즘 소설을 읽다가 읽기가 공회전할 때가 있다. 무슨 말인지   없는 말들이 이어질  지루하다고 느낀다. 그럴 때마다 정찬으로 돌아가면  이유를 어림잡는다. 소설은 많은 단어를 잇고 연결해 문장을 만들고 문장을 엮어 이야기를 만든다. 효율이 낮은 작업이다.  말이 없거나 써야  말이 없어도   말을 위해 어떻게든  공간을 글() 메워야 한다. 소설가에겐  고된 작업이고 과정이지 싶다. 가혹하다.



©세계일보


하지만 읽는 입장에선 힘들다. 겨우 읽었는데 그렇고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어쩌란 말인가. 정갈하면서도 단단한 문장을 끈질기게 엮어 하나의 이야기가 끝내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치열하게 읽을테니 치열하게 써달라,는 요구, 쉬운 일은 아니다. 작가는, 그래서 작가라고 부르는거다. 소설가는 독자가 이야기만 소비하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사유하는 노동'을 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그런면에서 정찬은, 정찬의 소설은 클래식이다. 전형적(클래식)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보여 준다. 소설의 한 전형이자 전범, 이 표현이 맞나? 소설가 지망생이 있다면 정찬의 문장을 헤집고 살펴둬야 한다. 한 문장에 한 호흡과 한 생각을 담으면서도 뻔하지 않을 것, 한국소설의 근대와 현대를 잇는 단 하나의 작가가 정찬이지 싶다. 평론가 김현은 죽기 한해 전에 남긴 <행복한 책읽기>에서 이렇게 썼다.



최인훈•이청준•이문열•복거일의 뒤를
이를 또 한사람의 작가가 나온 느낌이다
(김현, <행복한 책읽기>, 335쪽, 문학과지성사, 2016년)




"... 몸 속으로 냄새가 파고 들었다. 그 냄새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일 수 없었지만 나는 죽음의 냄새라고 생각했다. 죽음의 공간, 죽음의 냄새, 나는 검은 벽에 등을 기댔다. 두 손바닥이 벽에 닿았다. 차갑고 끈적끈적한 감촉이 느껴졌다. 나는 몸을 떨었다. 그때 내 눈 속으로 들어 오는 것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것은 따뜻한 색깔이었다. 지하의 공간에는 색이 없었다. 어둠을 밝히는 빛마저 벽의 촉감처럼 음산하고 차가웠다. 환각이라고 생각한 나는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떴다. 그러나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따뜻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나는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것은 종이학이었다. 검은 쇠판으로 된 시체 소각로 위에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종이학들이 날개를 펴고 사뿐히 앉아 있었다..."(정찬, '슬픔의 노래' 중에서, <아늑한 길>, 250쪽, 문학과지성사, 1995년)



이 문단을 보라. 문단을 이루고 있는 촘촘하나 멋 부리지 않은 문장과 단어를 보라. 담담하지만 먹먹하다. '마음의 통증'을 노린 어설픈 표현은 무슨 말인지 알아 먹기 어려워 대개 지루하기 십상이다. 정서적인 단어나 표현이 마음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몸의 통증'을 노려야 한다. 사실에 입각해 문법의 기본을 갖춘 기본적인 문장을 성실하게 구사해야 한다.





기본기는 어디나 중요하다. 차이는 거기서 생긴다. 작가가 소설을 쓰는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하는 것, 결국 의사소통이다. 독자가 알아 먹을 수 있게 쓰는 것, 소통은 불가능하다지만 그 불가능성을 넘어서려는 끈질긴 노력, 오독을 감내하면서도 가 닿으려는 (치열이 아니라) 치밀한 노동이, 소설 쓰기다. 소설 쓰기도 노동인 이유다. 댓가를 바라는 노동, 노동으로서의 소설 쓰기의 시작은 정확한 글쓰기다. 멋 부리기 전에 그걸 견뎌내야 한다.




1988년 늦가을 술자리에서 기형도가 정찬에게 물었다.


이야기를 만드는 행위의 끔찍함을 어떻게 견디느냐?



정찬의 단편집 <아늑한 길>에 든 '슬픔의 노래'와 <정결한 집>에 든 '흔들의자', <두 생애>에 든 '희생'을 읽었다. 그 끔찍함을 견딘 문장이 뿜어내는 까마득한 기운, 몸에 징그럽게 달라붙는다. 정찬,의 소설은 단편이든 장편이든 고루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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