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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성 Jan 19. 2022

디디에 에리봉,이라는 작가

랭스로 돌아가다(디디에 에리봉, 문학과지성사, 2021)



고이 간직해뒀던 작가 디디에 에리봉, 푸코 전기 작가로만 알고 있었다. 정작 푸코에 대해 쓴 책은 아직도 책장에 덩그러니 꽃혀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었다. 매혹적인 글쓰기, 결국 글의 매혹은 문장을 구성하는 단어의 화려함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 문장을 쓰기까지 걸어 온 삶의 궤적, 글쓴이가 '어디에서 누구의 편에 서 있었는가?'다. 정치적 올바름은 '자신을 누구와, 어떤 집단과 동일시하고 있는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물론 말이 아니라 '삶의 궤적(발자취)'으로 말이다.





그러니 서로 뒤얽힌 두 여정이 있는 셈이다.
자기 자신을 재발명하는 상호의존적인 두 가지 궤적.
하나는 성적 질서와 마주한 궤적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 질서와 마주한 궤적이다.
그런데 내가 글을 쓰기로 했을 때 분석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성적 억압과 관련된 첫번째 궤적이었지,
사회적 지배와 관련된 두번째 궤적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러한 실존적 배반은
바로 이론적 글쓰기의 몸짓에 의해 한층 심해졌을 것이다.
(위의 책 30쪽)





수많은 디디에 에리봉의  중에 고작 3 번역되었다. 저자 소개에는 30권이 넘는  목록이 있다. 한국 독자들에게 그는 아직 미지의 작가다. 부지런히 공을 들여 빨리 번역해주길 바란다. 그의 대담집이나 인터뷰집도 어서 번역되면 좋겠다. 특히 <르 누벨 옵세바퇴르(Le Nouvel Observateur)>에서 들뢰즈와 했던 대담은 꼭 번역해주길 빈다. 말과 글의 간극이 적으면서도 엄연한 차이를 알고 있는 , 말은 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 글이지만 결국 말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글쟁이의 , 디디에 에리봉의 글은 매력적이라는 말로는 한참이나 모자란다. 어서들 분발해주시길 바란다, 진심으로.






그럴리 없다고 굳게 믿고 있지만, 언제가 혹 글(책)을 쓰게 된다면 이런 글을 쓰고 싶다. 자전적이지만 에세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계급적으로 지나온 길에 대한 성찰이 담긴 글, 사회적 이론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계급과 사회적 위치에 대한 분명한 토대 위에 서 있는 글, 솔직해서 따스하고 아리따운 글이 판을 치는 시대다. 삶이 팍팍한 탓일 테지만, 이럴 때 일수록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노스탤지어가 파토스로 변하기는 불가능하다." 변화는 쓰리고 아프기 마련이다.




내게 글쓰기는 헌신이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많은 것을 잃었다.
하지만 글쓰기가 없다면, 실존은 공허하다.
만일 책을 쓰지 않았다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다.
- 아니 에르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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